#1.
고등학교 다닐 때 학주 선생님은
결석을 한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지각했다고 결석하지 마라. 몇 대만 맞으면 된다.
#2.
월요일 자정 제사를 토요일 저녁부터 준비를 했다
정성을 다해봐야겠다는 의욕에 재료를 일일이 준비했다.
반조리 식품 개발이 얼마나 혁신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3.
울고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아버지가 꿈에서 등을 가만히 쓸어주셨는데
막상 아버지 영정을 앞에 두면은 크게 할 말이 없어진다.
몇 번의 절과 몇 잔의 술을 올려드리고는,
아버지 얼굴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촛불을 껐다.
여전히 아버지의 불사不死보다는 생生이 더 좋은 것 같다.
#4.
아버지랑 나는 한방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같이 잠들고는 했다.
아침에 깨 보면 스탠드를 앞두고 일식처럼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등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건강 관련 책을 보고 계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거래처에 가보고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아버지를 통해서 새로운 영업방식과
업계 정보 등을 잘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왜 그렇게 아버지가 공부를 했는지 몰랐다.
실제로 일을 하고 나서도 왜 그렇게 공부를 하셨는지 더 이해를 못 했다.
#5.
일의 진행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빠졌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을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저곳에 필요한 물건을 여기에서 가져다주고 돈을 받는 그런 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내가 과연 계속할 수 있을지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특별한 공부가 필요한 분야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기본적인 성분과 제품명 정도만 알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건방진 생각이었고 안이한 자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일종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하셨던 거다.
아버지는 헬스케어라는 말을 잘 모르셨지만
평생을 거쳐서 나름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하고 계셨던 거다.
좋은 헬스케어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더 좋은 제품을 알고,
이 제품에 맞는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해주기 위해서
매일을 하루처럼 시간을 쪼개서 나름의 공부를 계속하셨던 거다.
#6.
일의 크기는 그 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생각의 크기가 같다.
그런데 나는 참 안이했었던 것 같다.
안이했기 때문에
더 크고 새로운 눈으로 내 일을 보지 못 했다.
그래서 20대 내내, 그리고 서른 이후 몇 개월간을 나름의 뜻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거 같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고객들을 만나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
#7.
어쩌다 보니 30대인 채로 2년을 보냈다.
서른이면은 뜻을 세워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야 나름의 뜻을 세운 것 같다.
2년이나 늦었으니…
조금 지각했다는 생각으로,
몇 대만 맞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8.
고양이의 매력은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랑스럽다는 데 있다.
오늘도 이기적인 그녀와 함께 잠이 든다.
2016년 1월 4일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