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이팝나무 꽃

by Caesar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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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예전 고려에서는 토지 소출의 1/10을 세금으로 거두었다.


다시 말해서,
한 해의 농사가 끝나면 총 소출의
5를 소작인이,
4를 지주가,
1을 국가가 세금으로 가져가는 구조가 고려의 세금 시스템이었다.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가 1/10을 정확히 거둬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고려는 벼슬아치들에게 봉록을 주었고,
그 봉록이라는 것이,
특정 지역의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수조권收租權이었다.


하지만 수조권을 가진 관리는
퇴임 후에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고 해도,
수조권은 계속 유지했다. 계속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는 또 새로 임명되는 사람에게 세금을 받아먹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들도 계속 받아먹었다.

자신만 받아먹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들도 받아먹었고,
손자도 받아먹었다.
받아먹는 사람도 당연하게 여겼고, 주는 사람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한 토지에 9명의 수조권리자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토지 1년 소출의 9/10가 귀족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 불합리를 없애는 것이 고려말 개혁의 핵심이었다.


정도전은 모든 개인 토지를 없애고, 공전만을 인정하는 균전제를 주장했고,
모든 자영농자가 땅을 공평하게 분배받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토지소유권은 놔두고, 수조권만을 문제삼아
수조권을 현직관리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과전법인데, 그마저도 경기 지방에서만 시작될 수 있었다.


그래도, 백성들의 삶은 많이 개선 되었던 모양이다.

‘이팝’나무의 원래 이름은 ‘이밥’ 나무이다.
그 의미가 바로 ‘이성계가 준 밥’이다.

고려말 조선초 우리의 조상님들은 이 나무의 흰 꽃을 보고 '쌀밥'과 같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이팝나무에는 백성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젊은 창업가들의 포부와 자부심.
우리 조상님들 특유의 상상력이 담겨있다.


강남역 이팝나무 낙화도
윤중로 벚꽃 놀이만큼 낭만적이다.

이팝나무 꽃이 떨어지고 있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거겠지.

의미있게 살아야겠지.


2016년 5월 23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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