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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esar Choi Mar 23. 2017

철인 3종 경기 연습 3주차

어쩌면 늙지 않는 방법 - 달리기는 참 지루하다

달리기는 참 지루하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다리 아픔이나, 숨 가쁨이 아니었다.

‘지루함’이었다.


달리기를 몇 시간씩 하다 보니 ‘러너스 하이’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달리기는 참 지루했다.


수영, 자전거 타기, 달리기를 번갈아서 하는 철인 3종 경기 연습을 할 때도

여전히 달리기는 지루하다.


달리기를 할 때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지루함의 여부다.

조금만 달린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지나가 있다면 그 날 컨디션이 괜찮은 거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정말이지, 시간이 죽어도 안 간다.

죽어도 안 가는 시간이 가는 걸 보면서 달리기를 한다.


트레드밀 달리기보다는 야외 달리기가 덜 지루하다.

지속적으로 바뀌는 풍경, 흘러가는 바람, 함께 뛰는 사람들을 보며 달리는 일이

무한궤도를 돌아가는 레일 위에서 뛰는 일보다는 더 낫다.


하지만 야외 달리기는 두 가지 단점이 있다.

달리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갈 생각을 깜박하고 한참 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돌아오는 길이 큰일이 되기도 한다.

돈도 없이 달리다 보면 달린 거리만큼 걸어서 오는 경우도 생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러다 보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봄철 야외 달리기는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건강해지자고 야외 달리기를 했는데 극심한 두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아무래도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편이 좋겠다.


요즘 트레드밀에는 거의 TV가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내 나름대로 달리기 지루함을 극복하는 TV 활용법을 생각했다.


찍어놓고 보니, 참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달리기를 했구나 싶다.





1. 일단, 일반 프로그램보다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낫다.

 스포츠는 거의 대부분 시간이 정해져 있다. 운동 경기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 지루함이 덜해진다.


2. 스포츠를 본다면 시간이 ‘채우는’ 운동보다는 시간이 ‘떨어지는’ 스포츠가 낫다.

 시간을 채워가는 운동은 축구나 핸드볼 등이고, 시간이 떨어지는 운동은 농구, 권투 같은 스포츠다.

 트레드밀의 시간도 똑같이 시간을 채운다. 그래서 시간을 채워가는 운동을 보면은 트레드밀과 큰 차이가 없어서 지루함이 비슷했다.

하지만 시간이 떨어지는 운동을 보면서 달리면 시간을 없애는 느낌이 들어서 지루함이 덜했다.


3. 시간이 떨어지는 스포츠는 UFC가 괜찮다.

 선수들이 피 튀기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드레날린이 나와서 그런가 힘든 게 좀 덜했다. 1 라운드가 5분 이기 때문에 몸이 좀 힘들다 싶을 때 ‘이 라운드까지만, 이 라운드까지만…’하면서 뛰면은 목표치를 달성하기도 쉬웠다.


4. UFC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가서 당황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한 경기 중에서 가장 ‘볼만한’ 부분만 보여준다. 달리기를 하면서 UFC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남은 라운드 시간을 보게 된다. 몇 분쯤 남았겠거니 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 경기가 끝나고 다음 경기로 넘어간다. 트레드밀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다. 그때 약간 힘이 빠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그런 말이 있겠거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나름 과학적인 배경이 있는 이야기였다.


사람의 뇌는 비슷한 일이 계속 생기면 활용 효율을 위해서 그 일을 없었던 일로 기억한다고 한다.

매일을 비슷하게 살면 뇌는 그 비슷한 매일을 없었던 시간들로 기억한다.

나이가 들수록 일도 정해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무감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뇌는 그 일들을 머리 속 없었던 일 폴더로 넣어버린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 시간을 채운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듯이 느껴진다.


스포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특정 운동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하이라이트는 말 그대로 ‘볼 만한’ 내용, ‘없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그 외의 내용은 안 봐도 그만인 내용, 없어도 큰 지장이 없는 내용이다.


예전에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같은 내용, 같은 대사를 같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도

연령대가 어린 관객들은 자지러지듯이 반응하는데

연령대가 높은 관객들은 큰 반응이 없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없애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신선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면,

시간은 어쩌면 아주 천천히 흐를지도 모르겠다.


매일을 여름방학처럼 산다면. 

어쩌면 우리는 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는 생각을 트레드밀 위에서 3주 차 달리기를 하면서 했다.


3주차 계획, 수영 빼고는 거의 다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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