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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Sep 14. 2021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

위대한 과업

 그대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니체가 퍽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 준 적이 있다. 존경하는 영웅 한 사람을 떠올려 보고 그 영웅을 따라 해 보란 것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영웅 속에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온전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선 내가 존경하는 영웅을 닮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도전되는 말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영웅은 사실 퍽 많다. 시기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존경에 동질감을 덧붙여 나는 카이사르를 꼽았다. 내가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태어난 달이 같아서인지, 둘째 아들의 장남이라는 점도 뭐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많지만 사실 그냥 동질감을 강렬하게 느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대목을 읽을 때면 내가 직접 칼에 찔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책이나 소설 같은 창작물에서 본 카이사르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본질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카이사르와 직접 만나보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간접적으로 그와 만나는 방법은 그가 직접 쓴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서문화사에서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를 합쳐서 더 싼 가격에 판매했지만, 표지 디자인과 번역 수준이 천병희 씨가 번역한 것이 우수하다고 하여 천병희 번역본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시도부터 우스운 짓이었다. 우리가 존경하는 영웅이란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름없다. 현재 만나는 사람들조차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지로 여기는데 2천년전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려 하다니 아주 우스운 짓이다.

‘갈리아 원정기’ 는 3인칭으로 서술되어있다. 카이사르가 뭐 뭐 했다. 이런 식의 서술이 많아서 3인칭 서술이라는 것을 모르면 이게 카이사르가 쓴 게 맞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것이나 점점 읽다 보면 특유의 서술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감상은 재미없는 일기장 느낌이었다. 군사적인 보고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갈리아의 부족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선진적인 부분이 많았다. 로마에 비교하여 야만적이란 거지 군사를 운용하는 것이나 함선의 규모, 요새와 해자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점을 볼 때 동시대 다른 지역의 문명 수준을 생각하면 결코 야만적이라고 할 수 없다. 카이사르도 갈리아의 부족들을 무조건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갈리아 원정’이라고 하면 영웅 과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12 과업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 후 많은 영웅이 군공을 쌓기 위해 자신의 갈리아로 달려갔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며 대놓고 갈리아 원정과 비교할 정도이니 영웅들은 모두 자신만의 갈리아가 필요하다.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하며 카이사르가 서술한 ‘갈리아 전기’는 끝이 난다. 뒤에 부분은 히르티우스가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베르킨게토릭스의 항복 장면은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져서 기대되는 장면이었지만 역시나 그냥 담백하게 기술되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웅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된다. 내가 카이사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치밀하게 자신을 통제하여 위대한 과업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카이사르의 군사적 능력은 그의 비판자조차 인정한다. 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라 순발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군사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이끌어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기에 보고 배울 스타일은 아닐 거 같다. 어릴 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책으로는 처음 카이사르를 접했다. 그때 인상 깊게 읽은 구절로 마무리하려 한다. “그는 갈리아 지방에서 크고 작은 전쟁들을 치르면서 10년 동안 무려 800개의 도시를 점령하였으며 300개의 나라를 무찔렀다. 그래서 300만 명의 적과 싸워 100만 명을 죽이고 100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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