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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Sep 15. 2021

도스토옙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에서는 몰락이 없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익히 들어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도스토옙스키가 관념적인 '위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초 대전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읽던 책이 이 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하인'처럼 살고 있는 친구라서 쓴웃음이 지어진다. 분량이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난해하다고 소문이 나서 선뜻 구매하지는 못했다. 주기적으로 도스토옙스키를 복용하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몸이 되어버린지라 '미성년'과 '지하로부터의 수기' 두 개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미성년'의 미흡함이 꺼림칙해서 결국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선택하였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는 특유의 장광설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 읽기에 힘들었다. 시간 순서로는 2부가 먼저라고 한다. 2부 서두에 24살 때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밝혀 1부보다 2부가 훨씬 옛날 일인 것을 표방하고 있다. 더 옛날 일을 2부로 배치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1부의 지하인은 물론 장광설만 지껄이고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지만 단단한 사람 같았다. '단단함' 이란 말이 긍정적으로 사용을 많이 하지만 여기서는 긍부정 모두를 함의한다. 1부의 지하인은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홀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여러 충동을 만족시키고 비틀어진 생각들을 나열한다. 거기서 특유의 뒤틀림은 느낄 수 있었지만 나약함은 찾을 수 없었다. 2부의 지하인은 나약한 면모를 너무나 많이 보인다. 그 나약한 면모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항상 시작된다. 소심함, 열등감을 보이며 그는 타인과의 교류에서 위태롭고 나약해진다.


그를 별로 내켜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억지로 끼어드는 대목은 나까지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까지 지하인을 내켜하지 않는 무리들과 교류를 하려 하는지,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한 데도 왜 그런는지 궁금했다. 특유의 반항심 아니면 억압된 것의 분출 그 정도로 처음에는 해석했다. 리자와의 관계에서는 반대의 경우라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모욕을 주려 하는 것은 뭐 나름의 싫은 이유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자신에게 순수한 마음을 품는 리자에게도 모욕을 주는 행동은 미성숙한 면모가 부각되었다. 


지하인은 결국 리자에게 돈을 쥐어줌으로써 모욕을 준다. 행위를 후회하고 리자를 찾아 나서나 결국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1부, 2부 배치를 한 것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완전하고 단단해 보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 나약한 면모가 드러나는 것을 더 완연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런 배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구성이 '몰락'하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몰락'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각자 자신만의 산에서 내려온다는 의미로, 세상과 타인과 대면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지하인'은 결국 몰락이 없는 지하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책에서 읽은' 생각들로 무장한다. 완전하고 단단한 것이 좋아 보이지만 인간에게는 나약한 면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 또한 뒤틀림이다. 우리 모두는 몰락해야 한다. 타인과의 교류와 관계에서 끊임없이 몰락해야 한다. 지하로 들어간 결말이 절망적이라고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여기서 1부와 2부의 배치를 생각했다. '지하인'이 다시 몰락을 위해 나갈 것이고 끊임없이 몰락하리라는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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