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스틱 베이커리 Oct 31. 2017

게으름

Noun / Adj / Verb

게으름 "


의지와 반비례하여 무거워지는 정신적 질량. 게으름과 의지는 상호 반비례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 의지가 강한 이들일수록 게으름이 가벼워지고, 의지가 적은 이들일수록 게으름은 무거워진다. 이는 정신적 질량이지만 육체와도 다소 연관이 있어, 간혹 (필자처럼) 게으름이 무거워질수록 육체도 무거워지며, 역 또한 참으로 성립한다.


내가 항상 운동을 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근육의 긴장을 유지하여 '최대 시작 방해감(感)'을 쉽게 넘기기 위함이며

동시에 게으름을 가볍게하여 나의 의지가 강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Prologue) 中 -




나태함, 혹은 태만과 유사하다. 마치 엉덩이가 땅에 붙어있는 듯하거나, 온 몸에 근육이 움직임의 의지를 잃은 상태 혹은 감정. 큰 근육들의 퇴화와 관련있다. 부지런함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큰 근육을 자극시키기 충분한 역치값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생기지 않는 이상,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대신, 머리가 움직인다. 자신의 생각에 깊게 빠지기도 하고, 수많은 시나리오와 가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진다. 다행스럽게도 게으름의 상태에 도달했을 경우에도 작은 근육들은 충분히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물건들을 기록할 수 있다. 


게으름이 나오는경우는 다양하나, 모든 인류는 점심 혹은 저녁을 먹은 뒤 나태함이나 노곤함을 느낀다. 이는 만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디 인간은 배고픔의 동물이오, 가장 인간의 큰 재능은 욕망, 결핍이다. 이 결핍은 나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함이고, 이 배고픔이 채워지는 순간 인간은 만족함을 느낀다. 이로서 큰 근육들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움직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고, 게을러진다. 즉 강제로 나태해질 수 있다. 


남한의 찜질방, 혹은 집안의 온돌이나, 적도 부근의 나라들의 사람들이 그저 여유롭고, 느리고,천천히 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주변 온도에 의한 근육의 강제적 이완으로 인해 의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으름이 계속되는경우, 근육은 지속적으로 움직임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결국 앉아있는 생활을 지속하게 되고, 이에 적응하게 되어 살이 찌는 것이다. 더 잘 앉아 있기 위해서 근육을 퇴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게으름을 타파할 수 있을까? 강제로 주변을 약간 춥게 만들거나, 밥을 내가 배불리 먹을 양의 3/4 정도만을 먹으면 된다. 이로 인해 육체적, 즉 호르몬적으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근육에 긴장이 더해지게 되고, 게으름의 역치값이 현저히 낮아짐으로써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육체적 상태가 된다.


특이한 점은 어느 누구도 게으름을 사회 악으로 규정한 적이 없다. 다만 게으름이 가진 '만족'의 속성은 인간의 '발전'과 극단에 서있는 특성으로 지속적인 욕망으로 인한 발전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 있어 '사회적 소악(小惡)'으로 느껴질 뿐, 이에 대한 윤리적인 기준은 없음을 알아야한다.



Diligent (부지런한)"

운동을 함으로서 부지런해 질 수 있음은, 큰 근육들을 강제로 활성화 시키기 때문에, 큰 근육들이 이미 움직임의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이므로, 신체적으로 게으름의 역치값이 낮아진다. 그러므로 큰 근육들이 쉽게, 작은 자극들에서도 움직이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된다.







FRANKLY DESIGN STUDIO, Seoul, Korea, 2017

ⓒ Copyright 2017 | All right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안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