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욱 Jul 13. 2023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자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요즘 깊은 고민이 하나 있다. 7월 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새로운 임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 매년 1월과 7월은 흡사 화개장터 장날 분위기와 비슷하다. 상인들이 각자 집에 보유하고 있던 귀한 약재와 수공예품, 귀한 물건들을 들고 나와서 주인을 찾아 한꺼번에 몰리는 시골장터의 모습과 유사하다. 장터에서 상품가치 있는 좋은 물건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비싼 값에 주인을 잘 만나 쉽게 팔리고. 그럭저럭 효용가치가 없는 물건은 매도인과 매수인의 줄다리기 가격협상 끝에 팔리기도 하고 매도인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끝까지 판매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장터 상황과 비유하기는 적절하지 않지만 공직사회 인사시스템도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중앙정부에서 근무하지 않아 중앙부처 사례는 논외로 하고 25년 지방자치단체 근무 경험사례를 보면 젊고, 유능하고, 에티켓 좋은 인력자원은 호시탐탐 각 부서장들의 관찰대상이다. 반면 나이 많고, 독불장군 고집세고, 징계가 있으며, 복지부동하는 자원은 공식적인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복도통신에서 그 사실이 감지된다. 자기 집안 가족사보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직원들의 학력, 경력, 인성 등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히 꿰뚫는 정보력은 미국 FBI를 능가한다. 신기한 것은 세인의 평가가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직사회는 그만큼 평가가 무섭다. 한번 찍히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천사도 악마로 추락하고 악마도 천사로 둔갑하는 곳이 공직사회이다.


중앙정부는 대통령 임기 1년을 지나면서 차관급 인사를 시작으로 국정운영의 틀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다. 민선 8기 지방자치단체장 출범 1년이 지났다. 지자체장 임기 4분의 1이 지난 것이다. 7월 초, 부시장, 부군수 등 부단체장과 국장급(3급), 과장급(4급) 인사가 끝나고 팀장급(5급) 인사와 6급 이하 직원인사만 남았다. 아마도 7월 내 모두 끝낼 방침인 것 같다. 나 또한 금번 인사에서 전보대상이다. 


오늘 아침 인사부서에서 팀장급 희망보직을 제출하라는 문자와 메일을 받았다. 공무원 전보는 2년마다 이루어진다. 3년 이상 근무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강제전보된다. 현재 환경부서에서 근무한 지 2년 6개월. 생각보다 오래 근무했다. 감사부서 근무를 제외하고는 2년 주기로 부서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근무기간이 2년이 지나니 서서히 매너리즘이 찾아오길래 지난 1월 인사과에 전보신청을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개월 더 있으면 3년이라 강제전보될 수도 있지만 강제로 팔려가기 전에 내 의지가 반영되어 품위 있게 이동하고자 고민 끝에 3순위까지 희망보직을 적어 인사부서에 제출했다. 7월 말 판도라의 뚜껑이 열릴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9급에서 6급까지는 내가 희망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얻었다.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난 것도 한몫했다. 감사(조사), 기획, 행정심판, 법제, 국제통상, 과학기술, 환경, 의회, 인재개발원, 여성가족부 파견근무 등 모두 내가 선택하여 근무한 부서이다. 억지로 떠밀려서 근무한 곳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무원에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5급 사무관 승진 이후 보직발령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는다. 적성과 능력을 감안해서 감사, 홍보, 문화 방면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금번 인사에서도 근무하고 싶은 곳의 자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의 자리는 없고, 지금 자리는 비워주어야 하고 집 없는 세입자가 이사해야 하는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공무원이 좋은 자리가 어디 있고 나쁜 자리가 어디 있나?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직사회는 좋은 자리 나쁜 자리보다 힘 있는 자리, 승진이 빠른 자리는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모두가 똑같은 자리라면 화개장터에 모인 상인같이 자신의 물건을 높은 값에 팔려고 피 터지게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나마 최근 공직사회는 승진을 포기하고 Well-being, YOLO를 외치며 자신의 삶에 올인하는 공직자들이 많다. MZ세대는 승진이 더 이상 유인체계가 아니다. 너나 승진해라! 도지사까지. 이런 식이다.  


정년이 5년 남았다. 공직관행상 1년 먼저 공로연수 들어가면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4년밖에 남지 않았다. 기왕 공직생활 시작했고, 승진을 위해 기초지자체에서 광역지자체로 전입했으면 최소 4급 서기관(과장)은 해보고 그만두어야지 않나! 하는 생각에 앞으로의 보직경로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금번 인사에서 1997년 공직에 입직한 동기가 벌써 서기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수한 케이스이지만 이제 서서히 차이가 발생한다. 열심히 일했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거북이 목처럼 왠지 소심해지고 움츠려 들게 된다.


2028년 6월 공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꿈에 그리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솔직히 승진도 걱정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 못하고 공직을 그만두지나 않을까? 그것이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조직 내 수천 명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7월 말까지 시간이 더디 흐를 것 같다. 별을 헤는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리는 수밖에...  Dreams Come True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Interview)는 어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