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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ul 31. 2019

콜 마이네임

카페 이름을 결정하기까지


약 일 년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너무나 즐거웠다. 이 일이 정말 내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곳에도 물론 진상 손님은 종종 출현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하는 동안은 즐거웠고 내가 만든 음료를 손님이 맛있다고 하는 게 좋았고 정말 바쁜 시간 몰려드는 어마어마한 손님들을 같이 일하는 동생과 둘이 실수 없이 처리하고 나면 말로 할 수 없는 쾌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 투성이라 가게 차리지 말고 여기서 계속 알바나 할까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카페가 매우 바빴던 날 바쁜 시간을 끝내고 한숨 돌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 가게 열었을 때 한가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은 생각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카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재미있게 일을 배워나가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현실이 와 닿아 걱정이 되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이곳만큼 잘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반면 한편으로는 그래도 오픈만 하면 대박 날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있었다. 대체 내가 뭘 믿고 이런 생각을 했지?

이때의 나는 일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창업 준비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며 보냈다. 창업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또 왜 회사에 나가지 않냐고 묻는 주변의 시선에서 창업 준비해, 라는 그럴듯한 말로 방패 삼을 수 있어서 오히려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을 하는 동안에 창업 준비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었지만 정작 창업에 필요한 건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들 투성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것들보다 그저 주어진 공간에서 음료 만들고 손님을 응대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를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2014년 말까지 하는 걸로 되어있었다. 이제 정말 슬슬 내 가게를 위해 발로 뛰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말 내 가게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결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가게를 준비함에 있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장소 그리고 이름이었다. 장소는 너무 일찍부터 찾아봤자 소용이 없었으므로 차차 다니며 보기로 하였고 여름부터 계속 카페 이름을 생각하며 지냈음에도 너무나 막막하였다.

다른 가게 이름은 다 센스 있어 보이는데 내 가게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평소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였고 남의 물건 이름은 곧잘 지으면서 막상 내 것을 결정해야 한다니 어쩜 그렇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언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 중에 좋아하는 작가인 정신님의 콜 마이네임 서머스쿨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하였다. 

영수증 주세요 라는 책으로 알게 된 정신 언니는 10여 년 전쯤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났고 같이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 명이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비록 흐지부지 끝이 났지만 그때의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가 꼭 필요한 워크숍을 통해서 다시 만나 뵙게 되어 혼자 설레고 괜스레 느낌도 좋았다.



콜 마이네임 2014.

수업은 준비물이었던 좋아하는 책 안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들을 적고 그걸로 이름을 지어보는 단순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아주 필요했던 수업이었다. 두 시간의 수업을 통해 어쩐지 계단 하나가 쌓인 느낌이 들었다. 당장 멋들어진 매장 이름을 정하진 못하여도 이 수업을 토대로 나도 나만의 이름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하며 스스로를 더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 머릿속에는 카페 이름으로 가득 차있는 채로 시간을 보내 던 중 11월 말 오랜만에 하영이를 만났다.

이태원에서 만나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좋아하는 카페에 갔는데 웬걸, 카페쇼로 오늘 하루 휴무라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녹사평역 쪽에 2호점을 오픈한 찬스브로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4층에 위치해 녹사평역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나서 각자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나는 아무래도 카페 이름이 너무 고민된다고 이야기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영이 눈을 반짝이며 "언니 그럼 언니 이름 그대로 솔림 어때요?"라고 말을 꺼냈다. 


내 이름 이솔림, 늘 푸른 소나무 숲처럼 사시사철 푸르게 살라는 뜻으로 부모님이 지어주신 순수 한글 이름이다. 어릴 적부터 이름으로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고 남들과 다르게 튀어 보이는 이름이 너무 싫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개명해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는 날도 많았다. 어디서든 이름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는데 그런 내 이름을 걸고 카페를 하라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솔깃한 생각이 들어 정말? 정말 그걸로 해도 될까? 너무 올드하지 않아? 이상하지 않아?라고 재차 하영에게 물어보았다.

왜요 언니, 너무 괜찮은데!라고 말하는 하영에게 그러면 일단 후보로 두어야겠다 라고 말은 했지만 딱 맞는 옷을 찾은 듯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녹사평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찬스 브로스, 하영과 나
괜스레 마음이 벅차 카페를 나오기 전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계속 카페 이름을 되뇌며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생각했다. 내 의견이 아닌 전문가의 의견이 절실해졌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는 루나 파크 홍인혜 님의 블로그를 즐겨보았는데 그곳에 실례를 무릅쓰고 문의를 드렸다. 카피라이터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답장이 없어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카페 솔림 너무 좋은데요?라고 운을 띄우시고 몇 가지 말씀을 덧붙여 답장을 주셨다. 전문가의 눈에도 괜찮아 보인다니 이제 됐다 싶었다. 마치 큰 산을 넘은 듯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큰 산이 몇십 개가 있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시작이 반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나면 나머진 쉽게 갈 수 있겠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2014년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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