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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Aug 26. 2019

내 자리는 대체 어디 있는 거죠

카페 자리 찾아 삼만리

1년간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았지만 내 마음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아니 밝지 못했다. 곧 계획한 대로 카페를 오픈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은 무엇이든 계획한 대로 행해야 직성이 풀리고 또 그렇지 못할 경우 나 자신을 자책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무조건 올해 안에 카페를 오픈해야 했다. 내가 이런 성격이라는 것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페를 준비하다가 안되면 다시 취직을 해도 됐던 일인데 그 당시의 나를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채찍질한 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주변에서 아무도 나에게 카페를 빨리 오픈하라고 부축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행복을 찾아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던 엄마조차도 카페 안 해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 스스로 이것을 계획대로 해내지 않으면 마치 내가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만 같아 하루하루 나를 옥죄였다.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카페 오픈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이미 준비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자신 있었다. 이제 가게 자리만 정하면 모든 게 오케이 되는 줄 알았다. 다시 한번 내가 얼마나 겁 없이, 준비 없이 창업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 있다. 이름만 정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가게 자리를 결정하는 일이 남았고 가게 자리를 정한다고 해서 내 카페가 하루아침에 뿅 하고 생기는 게 아닌데 왜 자리만 정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했을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매일 부동산과 웹사이트를 기웃거렸다. 부동산은 엄마와 함께 돌아다녔고 틈날 때마다 상권분석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사실 아는 게 없어서 사이트에 들어가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행위 자체에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 예산이 많지 않으니 볼 수 있는 자리는 한정적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누가 봐도 가게를 처음 오픈하는 게 티가 나는 어수룩해 보이는 여자 둘이 부동산을 돌아다니니 좋은 물건을 소개해 줄 리가 없었다.(모든 부동산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차를 타고 의정부를 쥐 잡듯이 돌아다녔는데 쌩초짜인 내가 보기에도 과연 여기에 사람이 올까? 싶은 곳들뿐이었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는 어디에 오픈을 해도 자신 었는데 점점 작아지는 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의정부에 국한시켰던 카페 위치를 강북으로도 시야를 넓혀보았지만 집에서 너무 먼 곳은 내가 부담스러웠고 마땅한 자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정부가 이렇게나 넓고 상가가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장사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니 시간이 갈수록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매물을 보았고 딱히 확신은 없었지만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럼 여기로 하자 싶어 계약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약하기로 한 날 부동산을 가는 길에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고 계약하러 가는 도중에 엄마와 잘 아는 부동산에 들러 그곳이 어떤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그 위치의 가게를 추천하지 않았고 또 내가 계약하기로 한 부동산이 좀 사짜 느낌이 난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만류하였다. 찝찝함 기분을 고대로 안고 부동산에 나와 다시 엄마와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았다. 나는 지금 마음이 급급해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고 조금 겁이 난다고 나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다시는 내 자리가 나올 것 같지 않고 또 부동산을 전전긍긍 돌아다니기가 너무 지쳐 그냥 여기로 해야겠다고 생각해 다른 것들이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본인이 보기에도 그 자리는 아닌 것 같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정 안되면 가게를 안 해도 되니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희한하게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자리에 계약을 했다면 일 년이 뭐람, 세 달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계약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말을 부동산에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우리 아쉬우니까 다른 부동산 한 군데만 더 가보자 하였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금 더 걸어 시내 근처 작은 부동산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예산을 들은 중개사분께서 우리를 한 가게로 안내하였다. 멀리 서봐도 허름한 건물에 사람 없는 전집,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누가 봐도 별로인 건물에 위치가 탁월하게 좋은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겠는데도 참 이상하지? 길 건너에서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여기다 싶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어떠한 모습의 카페가 완성될지 그려졌다.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또다시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어서 일단 가볍게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은 이미 정해진 것 같았다. 내가 카페를 창업할 당시만 해도 개인 카페가 흥하기보다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강세였고 서울에서나 차츰 예쁜 카페와 음료를 찾아다니는 일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의정부가 아주 지방은 아니지만 서울에서의 그런 유행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기까지 일 년은 걸릴 거라는 조언을 토대로 이 위치 정도면 젊은이들이 자주 만나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찾아오기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동인구는 내가 봐도 많을 것 같지 않았고 무조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 


다음날 저녁 다시 한번 엄마와 그 가게로 가 멀리서 바라보았다. 희한하게 이곳이 내가 찾던 그 자리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누군가 '그래 이 자리야. 여기가 정답이야.'라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미 한번 계약을 엎은 전적도 있고 지칠 대로 지쳐있던 것도 사실이라 이제 이 자리가 맞아야만 했다. 가게 위치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중요한 일인가 싶겠지만 혹여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자리는 무척이나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드리고 싶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계약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에 연락하고 부동산에서 다시 건물주에게 연락하여 날짜를 합의하고 계약날짜에 맞춰 부동산에서 건물주와 마주 앉았다. 

여기서도 초보티가 팍팍 났던 게 지금이라면 그 자리에 권리금이 그 돈이었다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당시에는 무조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고 바닥권리금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비싼 금액을 전 주인에게 지불하였다. 그 매장에는 쓸만한 물건이 하나 없었고 오히려 철거비까지 내며 철거를 해야 할 판인데 그 돈을 주고 들어갔다니 다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당시의 나를 정말이지 말리고 싶다. 어쨌든 권리금 거래가 끝나고 건물주와 마주 앉아 계약을 시작하였다. 

가장 중요한 월세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미 너무 비싼 금액이라 사정하고 사정해 딱 오만 원을 깎았음에도 관리비에 부가세를 더하니 만만찮은 금액이었다. 그래도 다른 방도가 없어 제시한 금액에 맞추어 계약을 진행했다. 당시에 건물주마저도 커피 팔아 월세 낼 수 있겠냐고 말을 했는데 아니 그럼 조금 더 깎아주시면 어떨까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생각보다 계약은 간단했다. 부동산에서 알려준 확인할 것들을 확인하고 서로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건네니 계약은 끝나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일들이 서류 몇 장으로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다니 조금 허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끝이 아니라 정말 시작이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갑자기 조금 무서워졌다.


그렇게 내 명의로 된 가게가 생겼다.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설레는 마음반 두려운 마음반으로 찍어둔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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