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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May 10. 2023

반달이 체크인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d가 괜찮다면 본인의 강아지 반달이를 며칠 맡아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기에 큰 고민 없이 흔쾌히 좋다고 말했고 남편에게는 정해둔 날짜와 함께 반달이가 올 거라 통보하다시피 말해두었다. 참치가 떠난 지 어느새 4개월이 되어갔고 이따금 사무치게 그리워 종종 눈물 흘리는 날들이 있었다. 고민 없이 다른 강아지를 맡아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나와 남편의 마음이 어떤지 우리도 잘 모르겠기에 한편으로 조금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었고 참치가 아닌 다른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단 며칠이 어쩐지 참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번복하기엔 내가 너무나 흔쾌히 수락했고 내 마음 한구석에는 강아지와 지낼 며칠이 조금 설레기도 했기에 그렇게 반달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d가 반달이를 우리 집에 두고 간 이후 주인을 찾느라 낑낑거리면 어떡하지, 낯설어서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싶어 걱정했던 우리의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집에 온 첫날밤부터 마치 원래부터 이 집에 살았던냥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웃었다. 며칠 지낼 집이 어떤 곳인지 여기저기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며 검사를 하더니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내 옆으로 올라와 본인의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찰싹 붙이고 앉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문이 반달이에게 활짝 열려버렸다. 내 옆에서 온기를 노나 주던 건 늘 참치였는데 마치 우리 참치처럼 내 옆에, 내 품에 자신의 몸 한구석을 기대어 온기를 나누는 반달이를 보니 마음의 문이 열리는 동시에 참치생각이 너무나 많이 났다.

또 나보다 참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짙은 남편은 반달이의 행동 하나하나 아주 주의 깊게 살피며 참치와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참치 이야기를 하며 참치를 그리워했다. 물론 강아지들의 습성 상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당연히 많을 테지만 우리에겐 그 모든 것이 특별했다. 그리고 참치가 그리운 만큼 며칠을 함께 보낼 반달이에게 최선을 다해보자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참치를 기리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사람의 성격이 모두 다르듯 강아지들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다른 강아지와 생활해 보니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모든 것이 새로웠다. 반달이는 참치와 하나부터 열까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강아지였다. 산책을 나가면 꼬리는 대부분 말려있고 걷는 시간보다 나에게 안겨 다니는 시간이 많았던 참치, 밖에서는 똥은커녕 마킹도 하지 않던 참치,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던 참치와는 정반대로 내가 운동 가려고 옷만 입어도 본인이 나가는 줄 알고 내 앞에서 뱅글뱅글 돌고 멍멍 짖으며 흥분하는 반달이, 산책을 나가면 꼬리가 한껏 올라가 빵실한 빵댕이를 씰룩씰룩 움직이며 한 시간은 거뜬히 걸으며 산책을 즐기는 반달이, 3보 1찍 수준으로 온 동네에 본인의 흔적을 열심히 남기는 반달이, 사람조아맨처럼 본인을 이뻐하는 사람은 귀신 같이 알고 귀여움 받는 것을 즐기는 반달이는 나에게 큰 문화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남편도 나도 모두 어리둥절해 원래 강아지가 이런 건가 싶어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반달이 같은 습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 참치가 특별했던 강아지라고 결론지었지만 그 대부분의 습성을 처음 접하는 우리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했다.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산책을 좋아하는 반달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늘 참치와 함께 가던 길을 다른 강아지와 걷고, 참치와 함께 가던 한강과 쇼핑센터, 카페에도 참치가 아닌 반달이와 함께했다. 외출을 온몸으로 즐기며 혓바닥을 한껏 내놓고 헥헥거리며 활짝 웃는 반달이가 참 예뻤고 참치가 겹쳐 보여 조금 아프기도 하였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밤이 되면 깔아 둔 이불 위에 올라와 몸을 길게 쭉 뻗으며 최고 편안한 자세로 꿀잠 자는 강아지를 보면 어쩐지 하루를 신나게 잘 보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나 또한 오랜만에 강아지털을 만지고 털에 코를 박고 얼굴을 부비며 참치가 떠난 뒤 몇 개월 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누렸다. 참 이상하지, 그럴 때마다 더욱 참치가 짙게 떠올라지는 것이.


우리가 맡기로 한 6일이 쏜살같이 흘러 반달이가 가는 날이 되었다. 6일 동안 정이 듬뿍 들어 아쉽기도 했지만 주인이 오면 우리는 바로 찬밥신세가 될 걸 알기에 덤덤히 작별을 준비했다. 저녁이 되어 d가 오자 더 이상 반달이의 안중에 우리는 없었다. 너무나 예상했던 그대로였기에 반달이가 가고 나서도 오히려 덤덤할 수 있었다. 그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보여준 사랑으로 이미 충분했다. 반달이가 타고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그냥 다 잊고 모두에게 사랑을 노나 주며 즐겁게만 지내길 바랐다. 사실은 눈물이 쪼금 나는 것을 꾹 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에는 아주 오랜만에 반달이를 만나러 d의 집으로 간다. 집들이를 위해 모이는 자리인데 반달이가 나를 기억할지 궁금하다. 설령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 그저 지금까지처럼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지내길 바랄 뿐이다.



반달아 늘 건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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