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는 여름이 한풀 꺾여야 정상인 날짜인데 아직도 꺾일 생각 없이 매일매일이 새로운 더위와 습도로 놀라게 하는 요즘이다. 요즘 나는 수영에 한창 빠져 매주 두 번 있는 수영강습이 아침 7시임에도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도 출석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수영을 비슷한 시기에 배운 친구들과 전지훈련이라며 오로지 수영 때문에 호텔을 예약해 수영장을 마음껏 누리며 1박 2일을 즐기기도 했다.
처음부터 수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었고 물에 뜨고 마음대로 팔을 휘적이고 마음대로 고개를 처 올리며 숨을 내뱉으며 간신히 앞으로 가는 정도였다. 그러다 나도 자유형만큼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수영강습을 신청했고 운 좋게 한 번에 당첨이 되어 3개월째 즐겁게 배우고 있다. 아직도 자유형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물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재미있고 좋다.
수영을 배우고 수영이 재미있을수록 나는 지난 여행들 속에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무수히 많은 수영장들이 떠올라 무척이나 아깝고 아쉬웠다. 게다가 여전히 너무 덥긴 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와 더 이상 실외 수영장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늦기 전에 로망 중 하나였던 한강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아직 너무 더운 여름이기에 폐장도 당연히 멀었겠거니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당장 이번주가 폐장일이 아닌가? 마음이 급해져 당장 한강 수영장으로 가기로 했다.
수영장에 가기 전날 가서 먹을 과일을 미리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작은 텀블러에 물을 담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가서 한강라면과 소떡소떡을 먹기로 하고 잠에 드는데 어쩐지 소풍 가는 전날처럼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수영장 오픈은 9시인데 나와 정반대인 성향의 부지런한 남편은 벌써부터 준비를 마치고 느릿느릿 준비하는 나를 기다린다. 왜 이렇게 서두르냐는 나의 타박에 출근하는 차들로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아느냐며, 그리고 조금만 늦어도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 주차하기 힘들다고 오히려 나를 타박한다.
나름대로 잽싸게 준비해서 나와 차에 타 내비를 켜보니 도착시간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이르다. 빨리 나가야 한다고 보채던 남편은 조금 머쓱했는지 어? 오늘 많이 쉬나 보다(우리가 수영장에 간 날은 8/15일 광복절 다음날인 금요일이었다.) 라며 혼잣말을 했다. 강남의 꽉 막힐 것 같던 대로도 막힘없이 수월하게 지나 오픈시간보다 20분 정도 빠르게 수영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보니 생각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아 주차장은 이미 반 정도 차 있었다. 주차를 하고 짐을 들고 입구로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수영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픈시간인 9시가 되었고 차례로 입장했다. 처음 가본 잠원 수영장은 세 개의 풀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첫 방문이라 입구를 지나 느낌대로 오른쪽으로 향했다가 아동풀 인걸 알고 잽싸게 경로를 틀어 빠른 걸음으로 왼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1.1m부터 1.3m의 높이가 하나로 이루어진 커다란 성인풀이 있었다. 남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있는 파라솔을 펴고 돗자리를 깔고 의자를 놓아 우리의 공간을 완성했다. 서울 한복판에 남산이 마주보이는 야외 수영장이라니!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9시 15분이 되자 입수해도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안전요원의 호각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처음이라 조금 쭈뼛거렸지만 이내 수영장에 몸을 담갔고 햇빛으로 조금 미지근한 물이긴 했지만 꽤나 상쾌하고 기분 좋았다. 커다란 풀에 레인은 딱 하나 튜브를 써도 되는 공간과 아닌 공간을 구분해 놓은 듯한 레인이었지만 한강 수영장에는 알게 모르게 규칙이 있는지 사람들 모두 투명 레인을 만들어 자유롭지만 규칙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기특하던지. 그런데 이곳에 돌고래만 모였는지 다들 자유형은 물론 평영부터 접영까지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모습을 보자니 자꾸만 의기소침해졌다. 이미 한차례 자유형을 시도하다 물을 한 바가지 먹은 후라 그런가 구석 벽에 붙어 멋지게 수영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부러워졌다. 그치만 나도 여기 연습하러 온 건데 위축되기만 해선 안되지 싶은 마음에 열심히 물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한강 수영장은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에는 모두가 나와야 한다. 물에 적응하며 물을 자꾸 먹던 첫 타임에는 시간이 더디게 가나 싶더니 15분 휴식을 끝내고 두 번째 타임부터는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몇 번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금방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다음타임은 11시부터 12시 한 시간의 수영 시간이 주어진다. 12시부터는 점심시간 휴식타임으로 1시간 휴식이기에 더 많은 시간을 주는듯했다. 자유형을 연습하다 중간에 자꾸 멈춰 서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붙는 내가 대견했다. 그리고 지난번 친구들과 수영장에 가서 재미 붙인 잠영과 회오리수영도 틈틈이 즐기며 신나게 30분을 더 보냈다. 점심때는 매점에 사람이 몰릴 것 같아 12시 전에 물에서 나와 라면과 소떡소떡을 샀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어제 미리 준비한 과일도 함께 꺼내었다. 복숭아를 넣은 통과 체리를 넣은 작은 통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는데, ????? 젓갈이 왜 거기서 나와..? 뚜껑을 열고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던 남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 체리를 담아둔 통을 가져왔는데 말이다. 젓갈을 담아둔 통과 똑같은 통이라 아무 의심 없이 집어넣었더니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니 근데 나 분명 복숭아통과 체리통을 같이 쌓아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덕분에 언제든 생각날 에피소드 하나가 추가되었다.
점심을 먹고 한 타임만 더 놀다가 집에 가기로 했다. 여전히 물속에서 신난 나에게 나를 못 따라갈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게 괜스레 뿌듯했다. 체력이 안 따라줘서 매일 비실비실하게 지내는 편인 내게 매일 운동하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하니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기분이었다. 우리가 정한 시간까지 물에서 알차게 보냈다. 씻을 곳이 야외라 마땅치 않았으나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충 물로 닦아내고 집에 가서 씻으면 그만이니까.
한강 수영장에 처음 와보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야외에서 수영을 하는 새로운 경험은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이제야 와본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그치만 내년여름에도 한강 수영장은 오픈할 것이고 그때는 올해보다 더 자주 오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나도 오늘의 돌고래들처럼 지금보다 조금은 더 성장해서 오지 않을까? 내년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이마는 수모를 써서 반쯤 하얗고 반쯤 불그스레하며 수경을 착용해 눈두덩이는 하얗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빨개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작성하고 있다. 한번 물에 들어갔다 나온 후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대충 바른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치만 어쩐지 신나는 여름을 보낸 훈장 같아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사실 조금 부끄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