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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ul 16. 2020

코로나로 책을 알릴 방법이 사라진 무명 작가의 단상.



  마음만 앞서는 둔재가 뭉툭한 글솜씨로 삶의 소중함을 붙잡아 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쉽게 쓰여진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책을 내기까지 근 이년 반의 시간동안 단 일주일도 한 꼭지의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기사를 싣겠다, 책을 내겠다 마음먹고 쓴 글이 아니었다. 아마 어떤 목표를 위한 글이었다면, 글을 써 왔던 근 삼년 중, 총 블로그 방문자가 마흔 분 남짓이었던 첫 이 년 중 어느 순간에라도 관두고 말았을 터다. 쓰기란 지금의 가 과거의 내게 보내는 조그만 위로였고, 함께 위로받으셨다는 분들이 나눠 주신 진심어린 말씀들이 그저 좋았을 따름이다.

  편집장님을 처음 뵀을 때 주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제안이 선생님에게 작가라는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 말. 글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보이는 꿈을 꾼다. 나 자신도 잊고 있었던, 죽기 전에 책 한 권 세상에 두고프다 는 꿈을 되살려 주셨다.

  출간만으로도 과분해서 (출판사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 사실 책이 많이 나가는 것 까지는 욕심이라 생각했다. 단지 작은 소망으로 초판본은 다 나가서, 그간 고생하신 분들에게 최소한의 누가 되지는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긴 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책이 나오니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언감생심 인세나 유명세가 간절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3쇄를 찍은 지금 들어온 인세는 두 자릿수를 갓 넘은 세 자리 만 원 가량. 귀하고도 큰돈이지만 이를 위해 3년 어치의, 하루 중 가장 소중하고 평온한 저녁 시간을 모두 할애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책이 많이 나오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바람이 피어났다. 열심히 진심을 고스란히 눌러 담은 이 책이 도움이 될 만한 분들에게는 어떻게든 가 닿기를 바랐다. 건강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아이가 막상 태어나니, 아이의 행복까지도 바라게 되는 마음과 비슷할까.

  책을 알리기 위해 무명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몸으로 뛰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쪽으로 준비를 많이 하였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 한 분 한 분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녀석이 생각보다 악질이었다.

  가진 거라곤 두 발과 목소리 밖에 없는 나를 위해 출판사 선생님들께서 (특히 우리 마케터 J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어렵사리 과분한 자리를 많이 마련해 주셨으나, 그 중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말았다. 그 자리들 중에는, 평소 독자로서 방문하며 '다음엔 여기에 꼭 작가로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 고 동경했던 서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타까웠다. 비유하자면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모아둔 학비를 예기치 않은 집안의 조사로 인해 소진하여,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진 부모의 심정이었다.

  포털사이트와 SNS, 도서 판매 홈페이지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들의 신간 소식이 가득하다. 특별히 이름나지 않은 작가의 손에서 태어나 그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책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리고 필요한 분들에게, 책에 담은 메시지를 전달 드리지 못하는 마음도 참 속상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상황에서 내 책에 내 손으로 직접 써 놓은 메시지가 생각이 났다. 삶이란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삶과 마음을 온전히 통제하거나 어떤 성과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원하는 행복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가장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느낌, 그 자체라는 것..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코로나라는 고약한 녀석이 마수를 뻗치지 못하는 인터넷 공간이 생각났다. 출판사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평소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용도로만 사용하던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시작하고 유튜브의 책 소개 채널을 들렀다. 따스한 서평을 남겨주시는 분들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책을 드리고 싶다는 연락을 드렸고, 글을 가까이 하시는 여러 분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정성껏 메일을 쓰고 책과 함께 전해드릴 사인과 편지를 적었다.

  근 5년 이상 해온 인스타그램이지만 해시태그를 팔로우 하고 스토리를 올리는 법은 이번에 처음 배웠다. SNS를 꾸준히 해 오신 분들이 보시기엔 미미하지만, 글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교류하는 근 2주 동안 팔로워 분이 천여 분 이상 늘어났다. 한 분 한 분 계정을 방문하고 글을 읽으며 차근차근 연을 늘려온 나로서는 참 감사하고 과분한 증가세였다. 인터넷 회의 프로그램으로 반가운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분들께서 귀한 시간으로 책을 읽어주시고, 책보다 아름다운 서평을 남겨주시는 것은 미처 상상치 못한 소중한 행복이었다. 아프로디테가 숨결을 불어 넣어 인형에 불과한 피그말리온이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한 개인의 독백에 불과한 책에 읽는 이의 서사가 덧입혀져야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모두가 코로나로 아무것도 못하게 된 덕분에 일어난 변화라니, 삶이란 참 모순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면서도 어쨌든 살아봐야 하는 것, 살아볼 만 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의 판매 순위는 늘 고만고만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yes 24 e book 인문 전체 1위라는, 믿지 못할 순위를 한 번 받아든 적은 있다. ^^) 그러나 출간 10여일 이후면 책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요즘의 출판 업계에서 근 한 달의 시간 동안, 3쇄를 찍는 동안, 앞 뒤의 책이 자리를 쉼 없이 뒤바꿈 하는 동안 그 고만고만함을 꾸준히 유지해 주는 책이 기특해 마지 않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읽어주셨고 또 읽어주실 여러분들 덕이다.


  자식 같은 책을 위해 가진 것 없는 이름 없는 작가가 고민해둔 많은 방법은 상당수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일련의 과정에서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한 번 더 배웠다. 삶은 늘 마음 같지만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우리가 원하는 바를 향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꼭 그 곳에 닿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는 소소한 소중함 들이 가득하다. 행복은 닿는 성취감이 아니라 그 소중함을 줍는 기쁨이다.

  글로써 만난 모든 분들, 살아오며 잠깐이라도 인연이 닿은 모든 이들, 소중한 책과 야속한 코로나를 동시에 안기는 이 오묘한 삶까지,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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