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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un 17. 2020

밥 먹듯 아이를 키우는 마음

도대체 그 희생을 하면서 왜 굳이 애를 키우는 거야, 에 대한 고찰


 인터넷에 떠도는 육아 이야기의 8할은 자조다. 모든 엄마아빠는 한때는 자유롭고 꽃다운 새내기였고, 소개팅남녀였다. for sale, new PS4, never used 같은 이야기를 듣거나 술자리에 흥이 막 오르려는 참 부터 귀가 생각에 동공이 흔들리는 유부남 형들을 보면서 총각 때는 '아니, 대체 왜 저렇게 많은 걸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좋은 무언가가 있겠지 라고도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건 없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즐거운 술자리도 줄었고 매일 매일 두드리던 피아노는 뚜껑을 열어본 지가 아득하며 차마 중고로 팔 지 못한 게임기에는 먼지만 쌓여 가는데, 그것들을 포기했다는 상실감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의 웃음만 보면 모든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이 아이를 잘 키워야 겠다는 열망에 타오른다는 박x스 광고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순간도 종종 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하는 대부분의 시간들은 무던하다. 적당히 즐겁고, 꽤나 고단하다. 나의 정체성이 ‘이두형’ 이라는 개성을 내려놓고 ‘아빠’ 라는 거대한 공통분모의 일부로 희석되는 것은 아닌지 라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이 ‘좋음’ 이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을 하다, 문득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밥을 먹는 것은 살아가는 데 필수이고 오래도록 식사를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지만, 밥을 먹을 때 구태여 그 사실을 되새기며 먹는 사람은 없다.


  아이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소중함을 되새기며 아름답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그러하듯이.



#2


  식사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때로 정말 맘에 드는 음식을 만날 때가 있는가 하면, 급히 밥을 챙겨먹다가 체할 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사는 그럭저럭 괜찮네, 라는 만족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일에 치이고 너무 피곤한데 아이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울거나 잠에 들지 않으면 전공의 당직 시절의 피로가 밀려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좋다. 아이의 동글한 코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고, 괜히 냄새를 맡고 싶어진다. 무표정히 누워있기만 하던 아이가 점점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웃고, 걷지도 못해 휘적휘적 넘어지며 안아 달라 팔을 벌린다. 눈물이 나올 정돈 아니지만, 휘발성이 없는 짙은 감동이다.



#3


  가끔 중요한 일이나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정신없이 바쁠 때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식사 시간은 바쁜 하루 중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시간이다. 오전 근무에 치일 때는 점심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하고, 데이트의 시작은 대개 저녁 식사이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해내야 하는 일들이 때로는 가정에서의 시간을 침범하기도 한다. 때때로 하지 않을 수 없는 발표 준비, 업무 준비가 쌓여 있을 때 아이를 돌보거나 젖꼭지를 닦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가 보고 싶다. 출장을 가도 보고 싶고, 퇴근하는 중에도 아이가 그립다.



#4


  매일 매일 먹는 밥이지만 늘 새롭다. 오늘은 어떤 메뉴를 먹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구내식당에서 주어진 식사를 할 때는 어떤 반찬이 나올까 기대되기도 한다. 밥 먹을 시간을 아껴 무언가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시간을 아껴 밥을 먹을 때가 많다.


  매일 매일 보는 아이지만 늘 다르다. 키가 자라고 손톱이 길어진다. 기지 못하던 아이가 내 다리를 안고 서고, 웃음에 담기는 진심의 정도가 늘어난다. 그렇다고 오늘 얼마나 자랐을 까 기대하는 마음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냥 오늘의 아이가 보고 싶다.



#5


  밥 먹는 게 삶의 전부라 생각진 않지만, 큰 시험을 끝내고 살얼음이 흐르는 생맥주에 겉바속촉한 치킨 다리를 뜯을 때면 혹시 우리는 먹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느낄 때도 있다.


  때때로 내 삶의 의미는 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는 물론 불가사의할 정도로 사랑스럽지만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느낌으로 육아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간 내가 소중히 해 왔던 어떤 것보다도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삶의 본질처럼 느껴진다.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거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것이 때때로 매우 그리울 때가 분명 있다. 그러나 매일매일 그것을 포기한다는 아쉬움은 아니다. 그냥,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굳이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낼 때가 많다.


  그 느낌은 가끔 생각나지만 그게 전부인 전 연인에 대한 느낌과 비슷하다. 지나간 인연은, 한 때는 그것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임질 것이 없다는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을 상실했다는 느낌 보다는,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과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나는 밥을 먹듯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마음이 고프면 늘 우리 아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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