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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un 13. 2020

기억하고픈 순간에 갈피를 끼우기엔 글이 좋다.

글로 순간을 담는다는 것



  이번에 출간된 책 한 토막에는 친구와 전화하던 기억이 짤막하게 담겨 있다.


  아무런 예고도 특별한 이야기 거리도 없이 너무도 평범한 밤에 걸려온 전화. 거리가 먼 통화에서 친구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회식 끝에 괜히 취하기만 했고, 문득 삶에 회한이 든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입대를 하고, 9주 치의 장교 훈련을 마치고 접경지역의 관사에 겨우 짐을 푼 참이었다. 입대 2주 전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마친 다음 바로 입대를 했었다. 군의관의 복무 기간은 3년, 훈련 기간을 포함하면 3년 3개월이다. 아내의 직장으로 인해 우리는 350km, 도로로는 400k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서른이 넘고 전문의가 되었지만 월급은 급격히 줄었고, 그나마 그 월급을 소비할 거리가 없는 곳에서 수년을 더 나이들 참이었다.


  건물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길을 지나 퇴근을 하여 관사에 들면 이내 해가 졌다. 만들어낸 불빛이 없는 시골의 밤은 도시보다 짙다. 그 어둠 속에서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는 느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기에, 그 짙음 속에서의 느낌을 외로움이라 표현하면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보단 그리움이 더 알맞다. 아내가 그리웠고, 진득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벗이 그리웠다.


  그럴 때 네 전화가 왔다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늘 열심히 하곤 있지만 이대로 면 괜찮은 걸까.' 그런 전화는 왠지 그럴 만할 때 온다. 사실 통화 내용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괜스레 서로가 그리울 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친구가 책에서 이 부분을 읽은 소감을 톡으로 전해왔다.


  "책을 읽는 데 신기하게 그 날 생각이 나더라. 그날 술 겁나 취해서 통화할 때 길바닥이었는데, 그때 가로등 불빛 까지 기억이 나."


  나도 그 날의 어둠이 기억이 난다. 집 안에서 받는 전화였지만 통화하며 왠지 걷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든 채 집 안을 거닐었다. 어둔 거실에서 달을 보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부엌을 거닐며 통화를 했다. 술에 취해 뭉그러져서 더욱 진심이 묻어나오던 친구의 목소리가 좋았다. 세상이 두려울 땐 서로를 찾아 1인분 3000원짜리 대패삼겹살에다 쌈장으로 밥까지 볶아먹으며 소주를 기울이던 스무 살 때. 밤바람을 맞으며 휘청휘청 다음 술자리를 찾아 걷던 그 때를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정확히 담기엔 사진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정확성으로 인해 사진에는 공백이 적다. 그 장면 가득 그대로 너무도 객관적인 사실이라 나의 마음을 담을 공간이 부족하다.


  반면 글로 표현하는 풍경에는 여백이 생긴다. 글로 담을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아무리 세심하게 적으려 해도 글이 묘사하는 풍경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생긴다. 그런데, 그래서 그 여백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깃든다.


  친구를 감싸던 가로등 불빛, 내 주위를 가득히 메우던 어둠, 어쩐지 싸늘히 식어 있던 그 때의 마음이 친구의 어눌한 진심에 다시금 데워져가던 느낌. 사진에는 찍히지 않지만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다.


  어쩌면 그 때가 내 기억과는 달리 자정쯤이 아니라 열한시 십칠 분 언저리 였을 수도 있다. 친구가 2차 이후가 아닌 3차 후에 건 전화였을 수도 있다. 아니, 회식이 아니라 친구와의 술자리 후 집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던가. 그것 까진 나도 친구도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사설처럼 엄정한 구조로 써내려가는 글이 아니라 마음가는대로 무작정 끄적이는 글은 이렇듯 정확하지도 확실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늘 두루뭉술하고 잡으려하면 잡히지 않지만, 느끼려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마음을 담기에는 이런 글이 좋다. 여기에는 구도도, 정확한 수치도, 객관적인 사실도 없다. 단지 내가 담으려는 것과, 그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아내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친구와의 통화를 글로 남길 때 내가 단어들을 엮어 담으려 했던 것은 그 전화가 몇 월 며칠에 이루어졌고 얼마나 길었는지, 이야기가 어떤 인과로 이루어졌었는지가 아니었다. 너도 나와 같구나, 우리는 늘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는 구나 라 이야기 하던 그 따스함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썼고 그 따스함은 책의 일부가 되었다.




  내게 글은 책갈피다. 기억하고픈 순간을 마주할 때 마다 글을 끼워둔다. 끄적여 둔 글로 삶을 거슬러 넘기면 그 때의 따뜻함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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