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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Nov 05. 2020

한때 가난했다고 하여, 가난을 예찬하지 말라.



학창시절 좋아하던 시인이 있었다. 그에게 푹 빠져 그의 시집 뿐 아니라 산문집까지 사서 모았다.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오래된 산문집을 찾아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돈만 알고 물질적인 것만 아는 요즘 사람들, 천박하다, 가난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한다..’ 라는 대목에서 급격한 위화감이 밀려왔다. 오래 전에도 분명 읽은 대목인데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느끼하고 역했다.




많이 살만해 졌구나, 를 문득 느낄 때가 있다. 최근에는 탕수육을 먹을 때, 고기가 없는 조그맣고 동그란 밀가루 튀김 조각은 굳이 먹지 않는 나를 보며 이를 또 한 번 느꼈다. 예전엔 그 조각이 너무 소중했다. 탕수육 덩이에서 떨어져 나온 밀가루 튀김 조각, 소스에 불어 말랑해지고 입에 넣으면 기름 맛, ‘고기 맛’ 이 나는 그 조각을 어릴 적엔 행여 하나라도 놓칠 까 다 먹은 접시를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마지막 하나까지 입에 넣었었다.

명절이 되면 외가 또래 친척들과 목욕탕을 갔다. 편도로 20분 걸음 사이에는 시장이 있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 탕수육 집이 있었다. 튀김기에 튀겨지는 그 ‘진짜 고기’ 튀김은 최소 판매 단위가 5000원 이었지만, 어쩐지 사장님은 어린 우리들에게는 2000원치도 팔았다. 천원단위 세뱃돈을 모아 2000원, 4000원치 탕수육을 시키면 한 사람이 두 세 조각정도를 먹을 수 있었다. 황홀한 맛이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고기들이 사라지면, 형들은 밀가루 튀김 조각 까지는 굳이 사람 수대로 나눠 먹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 우리 동생들 차지였다. 나름의 형님다움 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기 맛’ 이라는 말도 참 가난하다. 고기를 먹을 일이 드물어서 고기 맛이 나는 것들, 이를 테면 바싹 구워진 두부의 가장자리, 밀가루가 대부분이지만 어릴 때는 온전히 갈은 고기인 줄만 알았던 분홍 소시지, 갈기갈기 갈려 고기의 향만 나는 꼬마돈가스 같이, 고기와 유사한 맛이 나는 음식들을 나는 사랑했다.

탕수육 밀가루 조각과 분홍 소시지, 그 기억을 물론 사랑한다. 그 때가 그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아름답다고 해서, 가난이 아름답다고 해선 안 된다. 내게 그것들이 그토록 소중했던 이유가 예기치 않은 빚과, 그에 허덕이느라 함부로 고기를 사지 못했던 어머니의 주머니 사정 때문임을 안다. 회상은 아름다우나 지금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기억도 그리 미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줍잖게나마 출간 작가가 되어 4쇄를 찍고 수천 권의 책을 팔아본 나로서는 수십, 수백만권의 책을 팔았을, 한때 동경했던 그 시인에게 얼마의 인세가 주어졌을 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그런 그가 가난을 예찬해서는 안 된다. 나도 그렇다. 그 기억은 아름다웠지만, 그 가난은 아름답지 않았다. 가난마저 아름답다고 한다면, 결식 쿠폰으로 돈가스를 먹어도 될지를 고민하는 아이와, 쿠폰으로 감히 돈가스 같이 비싼 음식을 먹는다며 민원을 넣는 꼰대가 함께 살아가는 이 버거운 세상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아름다운 것이 된다.


지금 가난한자는 가난을 예찬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부른 배에 겨운 낭만은 거북하며,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이다. 책을 버렸다. 아끼던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낸 느낌이지만 그리 아쉽지는 않다. 낭만이 적더라도 위선보다는 낫다. 한 때 가난했다고 하여 가난을 예찬하지 말라. 추억이 아름답다곤 말하되 그 모자람이 옳은 삶이라 가르치지 말라.




잘못 읽은 문장의 느끼함에 대해 김치를 찾듯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를 펼친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2015, 돈1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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