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는 웹툰 ‘당신의 과녁’의 한 장면. 화자인 신부가 친구인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요즘 사람들이 종교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거 안다.” “모순된 행동이나 발언을 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며, 때론 범죄를 일으키기도 하니 당연하지.”
“그렇지만 엽아.. 그래도 나는 성직자다.” “나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 옷의 단추 하나 마저도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람들 마음의 평안이나 안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네이버 웹툰, ‘당신의 과녁’, 31화 중)
글을 쓴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의도와 진심을 어떻게든 꾹꾹 눌러 담아도, 그 글이 어떻게 다가갈지는 전적으로 읽는 이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한 번 던져진 글은 이리저리 가공되고 와전되어 오해되고 냉소받기 일수다.
심지어 달라진 세상과 어긋난 몇몇 책이, 제목만으로도 그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이리저리 조리돌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나의 글도, 나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 놓일 수 있겠구나, 하고 섬짓할 때마저 있다. 쓴답시고 이래저래 번잡한 마음 없이 차라리 조용히 나의 업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아마 쓰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애초에 쓴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실제적인 이득은 미미하다. 읽히지도 않을 글들을 쓰느라 머리를 쥐며 보냈던 시간들을 최저시급으로 환산한다면 지금까지 받은 인세며 강의료를 다 합친 것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도 출간을 할 수 있었다는 과분함 덕이었다. 그 기회조차 세간 사람들이 궁금함을 많이 가지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덕을 여러모로 보았음을 잘 안다.
그래서 자주, 이만하면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나의 시간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이만하면 원 없이 써 보았으니 그만해 볼까, 그런 생각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 때쯤이면 늘 이런 댓글이 마음을 두드린다. 두드려진 마음에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 날이면 아이가 잠든 후에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써 본다. 입고 있는 잠옷의 단추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나, 바이탈과를 하는 멋진 동기들처럼 죽음에 임박한 사람의 멱살을 끌어 다시금 세상으로 데려오지도 못하는 나,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런 것들이다.
스스로가 먼저 느꼈던, 마음이야기가 주는 평안과 안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쓴다. 나에게는 단순한 자기만족, 개인의 직업적 기능과 효용에 대한 확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당신에게 내가 먼저 접했던 그러한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읽은 당신이 그러했다 말해준다면, 앞으로도 나는 계속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