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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정신과 의사
Dec 09. 2020
이 버거운 삶을 이어가게 해 주는, 저렴한 것들.
우리 집 냉장고 야채 칸에는 늘 조그만 초록색 청양고추가 있다. 한 열개~ 열다섯 개 정도 든 고추 가격은 990원.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물가인데 고맙게도 이 가격은 학교 다닐 때 자취 때 보다 큰 차이가 없다. 라면을 끓일 때 이 고추를 넣고 안 넣고 로 국물의 시원함과 칼칼함은 극명히 차이가 난다.
라면을 끓일 때면 우선 넙적한 구이용 냉동만두와 냉동 대파 (있을 때)를 적당히 바닥에 깐다. 커피포트에 끓인 물 (그래야 속도가 빠름)을 냄비에 붓고 건더기 스프와 라면 스프를 먼저 넣는다. 이 때 바로 면을 넣으면 안 되는데, 냉동만두로 인해 국물의 온도가 확 내려가서 물이 끓기 까지 다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물이 다시 끓으면 면을 넣고 익는 동안 고추를 다듬는다. 굳이 도마와 칼을 꺼내 설거지거리를 늘릴 필요가 없다. 식용가위로 꼭지와 끄트머리를 따고, 생선 배를 가르듯 가위로 고추를 주욱 갈라 배를 열면 씨가 가득한 속살이 보인다. 고추씨는 하얀색 씨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가위로 이 하얀 씨 줄기를 살살 발라내면 씨도 깔끔하게 떨어진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은 고추를 살살 가위로 썰 때쯤이면 면이 적당히 익어 있다. 고추를 가위로 마저 썰어 넣고, 계란을 하나 깨뜨려 넣고 (스크램블처럼 휘휘 젓기도 하고, 계란에 젓가락을 대지 않고 온전히 끓여서 먹기도 한다.) 계란이 하얗게 잘 익을 때쯤이면 면도 딱 적당히 꼬들하게 익는다.
커다란 대접에 라면을 부어 먹어도 멋지지만, 아무래도 라면 먹는 운치는 냄비 뚜껑이다. 실제로 덮어놓았던 뚜껑은 적당히 따뜻해서 라면 먹기에 딱 좋다. 뚜껑을 열 때 확 올라오는 김을 몸을 젖혀 한 번 슥 피해주고, 면을 휘휘 저으면서 만두와 계란의 익음 정도를 한 번 본다. 김이 풀풀 나는 면발과 잘 익은 계란 흰자를 적당하게 집어 올려 냄비 뚜껑 위에서 슥 돌려주고 눈치 볼 것 없이 입으로 밀어 넣는다.
혀와 입천장이 아슬아슬하게 데지 않는 뜨거움과 알싸한 청양고추 향이 확 퍼졌다가, 탱글탱클한 면발의 질감이 느껴졌다가, 싸구려라 천대받지만 세상 어느 음식도 따라오기 힘든 그 매콤함과 구수함이 복잡 미묘한 라면국물의 향이 입안에 가득이다.
첫 한 입을 다 먹기도 전에 두 번째 면발을 뜬다. 이번엔 만두와 함께다. 젓가락질을 서툴게 하는 것은 만두 안의 건더기가 국물로 풀리기를 일부러 바란 것이다. 군만두로 나온 만두이지만 얇아서 면과 함께 끓이기에도, 익어서 부드러워진 상태로 젓가락으로 들어서 먹기에도 딱 알맞다. 면 한 젓가락 후 만두 한 입을 문다. 쫄깃한 만두피 사이로 라면 국물의 감칠맛이 더해진 육즙이 터진다. 요즘 만두는 어릴 때 만두처럼 속이 민치 상태로 되어있지 않아 고기며 부추가 씹힌다. 대단한 맛집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아직은 뜨겁지만, 요 때 쯤이면 국물을 한 번 먹어주어야 한다. 숫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이왕이면 드물게 들어있는 스프며 만두 건더기를 같이 떠서 입안으로 넣는다. 고추의 매운 향을 머금은 뜨끈한 묵직함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땀이 나기 시작한다. 라면을 먹으며 흘리는 땀은 끈적하지 않고 개운하다.
양으로 보나 칼로리로 보나 면의 양은 적당한 것 같지만 먹을 땐 늘 부족하다. 서운한 양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찬밥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대로 즐기는 운치가 있다. 바로 누룽지다. 실은 라면을 끓이기 시작할 때, 커피포트에 물을 많이 끓여서 반은 라면을 끓이고, 남은 반의 끓는 물로는 뚝배기에 누룽지를 끓이고 있었다. 라면이 다 끓을 때 뚝배기도 물을 끄고, 면을 딱 다 먹은 시점이면 누룽지도 적당히 부드럽게 숭늉이 되어 있다.
이걸 그대로 라면에 말아버리면 희석이 되어 맛을 망친다. 따로국밥 먹듯이, 고깃집에서 누룽지와 된장을 먹듯이, 누룽지 한 술, 계란과 건더기, 면과 만두 조각이 가득한 국물 한 숟가락, 그렇게 떠 먹는다. 그냥 맨밥을 먹을 때에 비해 한층 더 구수하고 뜨끈한 맛이 일품이다. 라면을 다 먹을 때 쯤 어쩔 수 없이 드는 짠기도 숭늉 국물이면 시원하게 씻긴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이런 작은 느낌이다.
주거비, 양육, 커리어, 노후 준비... 인생의 큰 것들은 늘 위압적이고, 답답하다. 나만의 진료 공간을 내 보고 싶어 알아보면 임대료가 내 전공의 시절 월급의 두 배를 넘는다. 5만원치 장을 보아도 쇼핑백이 무겁지 않다. 한참 오른 월세와 보증금 이자를 오르지 않은 월급으로 내면 남는 것이 없다. 여기서 금리가 갑자기 몇 배로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빚을 한 번에 다 갚으라 하면 어떡하지, 숨이 턱 막힐 때도 있다.
아내에게 물려받은, 이제는 13년차에 접어드는 모닝은 시내에서 타고 다니긴 좋지만 높다란 다리 위, 고속도로를 달리자면 트레일러가 옆을 쌩 하고 지나다닐 때 마다 안전이 걱정된다. 산악자전거도 탔었고, 덤블링 같은 운동도 했었고, 농구하다 인대가 파열되기도 했고, 총각 때는 그다지 겁 없이 살았던 나지만 이제는 몸을 사리게 된다. 내가 아프면, 누구도 나를 대신해 우리 가족을 건사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거창한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면 나는 작은 것들로 빠져든다. 욜로, 플렉스와는 다르다. 그럴 만한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없거니와, 나는 삶의 무게를 무시하고 싶진 않다. 내가 버티는 시간들이 내 아이의 분유 값이 되고,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켜줄 월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즐기는 삶만으로 그 비용을 충당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단지 나는 묵묵히 살아가는 방법만을 알고, 그 삶을 살아가게 해 줄 힘을 주는 것들을 소중히 하려 한다.
그래서 아직 나는 좀 더 짊어지고 싶고, 좀 더 이겨내고 싶다. 눈을 감고 삶은 그냥 괜찮은 것이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 라며 굳이 나를 설득하진 않는다. 힘겹고 슬프고 두려운 것이 많은 것도 인생이다. 그것들에만 시선을 빼앗기기는 싫고 저렴하고 소소하며 소중한 것들도 있는 것이 삶임을 잊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꿈을 위해서, 또는 스스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과로를 반복하고 내게 월급을 주는 이들로부터의 굴욕을 견딘다. 혹은 그러한 자리를 얻기 위해 하루종일 공부를 하거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그런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비싸지 않은 것들이 인생에 있다. 그것들을 느낄지 말 지 의 자유만은 우리의 것이다. 오늘 기가 막힌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었어서, 나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데, 맥x날드의 어플을 깔면 가입하지 않아도 시간마다 뜨는 할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 면담은 한 사람의 삶을 듣고 내 삶을 나누는 일인지라, 반복이 되면 꽤 지칠 때도 있다. 매일 이어지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 피곤해 질 때면 어플을 켜 본다.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 메뉴 할인 쿠폰이 뜨면 퇴근길에 드라이브 스루에 간다.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꾼다. 다이어트 때문에 그렇게 먹어 보았는데, 햄버거를 다 먹고 약간은 목이 메이는 느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공짜로 근사한 후식을 먹는 느낌이 들어 좋다.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내 차안, 시동을 다시 걸기 전에 커피 한 모금부터 쭉 빨아올린다. 말을 너무 많이 해 모래가 씹히듯 버석거리는 목구멍이 시원하고 촉촉해진다.
이대로 집에 가기엔 아쉬워 퇴근길 반대로 차를 몬다. 오늘은 아주 가끔 있는, 와이프와 아이가 처가에 간 날 이기 때문이다 (!). 경차가 힘겨운 엔진 음을 내며 언덕을 오른다. 바다가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언덕에 차를 두고 여러 겹의 소고기와 치즈, 생생한 토마토 육즙이 가득한 햄버거를 베어 문다. 이 느낌을 꼭 글로 남기자 다짐한다. 이런 것들도 있는 것이 삶이라면, 커다란 것들이 너무 버겁고 무서울 지라도 어쨌든 내일은 또 살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