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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정신과 의사
Jan 14. 2021
바다를 보며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
상실은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운 요즘, 밖이 그리울 때는 주로 드라이브를 떠난다. 고맙게도 집 근처에는 바다가 있다. 차로 20여분 정도를 가면 해안선을 따라 여러 바다를 볼 수 있다. 어제 똑같이 보았던 풍경인데도 해가 저무는 기울기에 따라, 사람들이 붐비는 정도에 따라, 파고에 따라 매일 미묘하게 다르다.
몇 달 뒤면 나는 30여년을 보냈던 바다 곁 도시를 등지고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진료실을 마련할 장소의 입지가 조금 더 좋아서, 육아를 도와주시려는 처가를 생각해서, 이동이 불가능한 아내의 직장에 비해 나의 자리는 내가 택할 수 있어서, 등의 합리적인 이유에서다.
아내가 나고 자란 도시의 풍경과 음식을 나는 좋아해서 다른 건 모두 괜찮다. 학연, 지연 같은 연고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병원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냐 는 주변의 우려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크게 마음에 걸리지는 않는다. 단지 그곳이 내륙이라는 것, 바다가 없다는 것,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라 할 만한 그 이유가 진지하게 마음의 발목을 잡는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늘 바다가 고프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과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도를 넘을 때, 실연의 아픔에 몸서리 칠 때, 전공의 시절의 격무에 도망치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물보라를 찾았다. 바다는 내게 특별히 해 준 게 없지만 내 삶을 보듬고 지켜줬다. 푸른 물빛이 낮이고 밤이고 그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늘 바다가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처럼, 늘 그렇게 살아가 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는다고들 하고, 사라져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한다. 맞는 말인데 조금 부연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해서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소중한 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삶이 이미 그 소중함 위에 얹어져 있고, 그 위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경 써야 할 것, 해결해야 할 일들을 쫓아다니느라 바빠 발밑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느낌에 가깝다. 우리는 늘 소중한 것들이 소중한 줄을 안다. 다만 그만큼 아끼지 못할 뿐이고, 소중한 것들은 영원히 곁에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은근히 이 오래된 고향에 두고 갈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바다, 친구들, 길거리 농구 코트, 좋아하는 서점, 단골 카페... 물론 그것들의 빈자리는 낯선 도시의 모르는 가게, 처음 먹어보는 음식, 세 가족 나들이의 추억들로 채워질 것이나 단지 오래도록 내 삶을 지탱하던 그것들이 그리울 것이다.
삶이 그런 것 인가 보다. 소중하지만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것들, 부모님, 젊음, 오래된 벗, 꿈, 살던 동네 같은 것들이 가득하고, 그것들이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아까운 것들이 찾아 드는. 소중한 것들이 자리를 비워주어 새로운 소중함이 흘러들 자리가 난다. 아끼는 것들이 들고 나는 것이 행복이자 살아가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마음 한켠에는 흘러간 것들이 모인 자리가 있다. 이삿날 짐을 정리하다 떨어진, 잊고 지내던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을 때처럼, 문득 그 자리를 들추어 볼 때의 아련함이 있다. 아끼는 것들은 늘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만을 내려놓으면 멀어진 것들의 소중함은 퇴색하지 않는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언젠가는 흘러 보낼 때가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것들이 비워진 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행복이 찾아들 자리도 있다는 원리를 알아차리면 그 아련함도 고마워진다. 그리워할 것 하나 없는 담백한 삶 보다는 그리워 할 것 하나 쯤의 낭만이 있는 삶이 좋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워질 이 순간을 미리 그리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