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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Oct 20. 2020

아장아장, 치킨, 그리고 산다는 것



  아장아장:

  부사 ,
1.키가 작은 사람이나 짐승이 이리저리 찬찬히 걷는 모양.

  국어책에서 조그만 아기 삽화와 함께 이 단어를 처음 학습할 때 어떠한 감흥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그 후 여러 글에서 이 단어를 접할 때도 단어 자체가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경험은 없다.  



  내 아이가 걷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여러 특별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친다. 초음파로 둥글게 보이던 세포덩어리, 목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던 아가가 제 무게를 지탱하며 마음 가는대로 몸을 옮긴다는 경이로움, 차근차근 사람에 가까워 져 준다는 고마움, 그 걸음의 끝에 내 품이 있다는 벅참... 말로 옮기기 힘든 여러 감정들을 느낀 후에야 그 느낌을 비로소 글로 돌아볼 만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직은 균형감각도 근력도 부족한 아기는 자신의 걸음이 어디로 내딛어질지 미리 파악하진 못하는 것 같다.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가슴부터 고꾸러지고 느리면 엉덩방아를 찧는데, 그러면서 적절한 속도를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엉덩이도 어색하게 이리 실룩, 저리 씰룩.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인해 철푸덕 넘어져 한바탕 울기도 한다.

   휘청휘청 이라는 단어에서는 술냄새에 절은 어른의  휘적한 걸음걸이가 연상된다. 어쩐지 바라보기에 애닳는 위태로움이 연상되는 흔들흔들 도 아기의 걸음을 표현하기엔 맞지 않다. 앙증맞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말 그대로 아기아기한 서툰 걸음이라 아장아장 이다.

    이 단어를 이렇게 특별히 느껴본 적도, 새삼스레 고찰한 적도 없다. 아장아장 이란 단어의 뜻을 외운 지는 오래되었으나 그 단어를 이해한 것은 비로소 지금이다. 아니, 이해해 가는 중이다.



  말로, 글로, 생각으로 정리하여 이해한 삶이란 내겐 메뉴판을 위해 멋지게 찍어놓은 요리 사진 같이 느껴진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음식에 니스칠을 하고 김을 표현하고자 드라이아이스를 곁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 그렇게 도구로 활용한 음식은 먹힐 기회도 없이 모두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는 느낌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으로 삶을 본다.

  우리가 치킨을 사랑하는 것은 광고 사진이 먹음직 스러워서가 아니라 양념치킨이란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뜨겁고 매콤달콤한 양념과 바삭한 껍질, 그 틈에서 흐르는 육즙과 부드러운 살코기의 감칠맛이 떠오르기 때문이고, 소풍을 가서 다들 김밥만을 먹을 때 부잣집 친구가 가져온 닭튀김 한 입을 얻어먹었던 기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감동은 전단지가 아니라 내 입속에 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말의 소용돌이에서 나와 하루를 온전히 느끼자고. 뼈다귀 같은 언어적 의미에 인생이라는 살을 붙여가는 것, 사소한 말에서도 사랑하는 순간이 떠오르는 것, 그런 단어가 많아지는 것, 왜 사는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삶의 이유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삶이란, 아장아장이란 단어에서 우리 아이의 엉덩이를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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