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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하겠고 의욕이 없는 마음, 천성일까요?

'왜' 보다는 '어떻게' 를 떠올려 보기,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저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입니다. 원래 계획대로 라면 자격증을 따고 공기업 원서도 넣고 취업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실기 시험에서 3번째 떨어져 이제 곧 졸업만 앞두게 되었습니다.

나름 어려운 시험이지만 못 붙을 시험도 아니고 주위 친구 한두 명은 기사 시험에 합격해서요.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마음 편지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붙을 텐데 그게 하기 싫어서 질질 끌다가 시험일이 닥쳐오고 이런 게 패턴처럼 반복되는 거 같았는데요, 어느 날 부모님이랑 얘기하다 너는 어렸을 적부터 시키는 거 뭐든지 하기 싫어하고 집에 혼자 있는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즘은 내 천성에 이런 게 있었지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달래 가면서 하려고 하지만 주변 사람 중에 좋은 곳에 취직하거나 뭔가 큰 걸 이뤄나간 사람들을 보면 패배감도 들고 '이런 나를 어디에다가 쓰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무료로 심리검사, 웩슬러 지능테스트 같은 걸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학비 본전 생각도 나고 막 학기기도 해서 받으려고 신청했는데 막상 지능검사 받아서 문제 있으면 어쩌지 좀 이런 유치하고 쓸데없는 생각들도 들고 있어서 마음 편지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게 지능 문제이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도 무시하기 힘들어서요..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사연자분께서 적어주신 고민은 좁은 시험과 취직의 문턱을 겨우겨우 넘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 모두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시험에 떨어질 때, 면접에 통과하지 못했을 때, 세운 계획을 실천하기 어려울 때 와 같이 원하는 바가 잘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 마음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시험 합격률, 면접의 통과 여부 같은 외적인 요인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시험 공부를 한 시간 늘리는 것이나 참고서적을 바꾸는 것 같이 내적 요인은 찾아내면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한 시도의 첫번째 이유입니다.

그보다 더 핵심적인 두번째 이유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나의 내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있으면 '실패가 설명이 된다는 이유로' 마음이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언가 내가 바라는 것이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은 심한 불안을 유발하는데, 적어도 그 원인을 파악하면 (엄밀히 말하면, 파악했다고 생각이 되면) '그래서 내 삶이 그랬구나' 안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며 지금 잘 풀리지 않는 일이 나의 천성 때문이라 인식하면,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편안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어 더욱 답답한 마음이 몰려옵니다.

사연자분이 어떠한 일을 이어가기 어려워 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 혹은 지능이 낮은 것이 말씀처럼 사연자분의 천성인 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단정지어 간주하는 것이 현재 사연자분께서 대학에 재학하시는 것, 3차례나 같은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시고 시도하신 것,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 오신 삶의 과정과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그보다는 시험의 불합격으로 인해 반복된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 무력감에 빠지셨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사연자분께서 만약 시험에 통과하셨다면 이러한 생각을 반복하셨을까 를 상상해 봅니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어차피 해도 안된다, 애초에 나는 이것을 해낼 수 없는 사람이다.' 라는 무력감을 학습하고 그에 알맞은 생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자격시험 합격, 공기업 입사 와 같이 원하는 사람이 많은 일에 도전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높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현재 사연자분께서 시험을 더 시도해 볼만한 상황인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다른 목표를 설정할 시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목표가 지나치게 높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를 조금 조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반대로 현실적으로 무리가 없는 목표이나 반복된 실패로 자신감이 저하된 상황이라면 스스로에 대한 격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어느 방향이든 '왜 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지' 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분석하기보다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나에게 좋은지' 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마음의 관점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지능 검사를 비롯한 심리적인 검사도 얼마든지 시행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사연자분의 의도처럼 '지금 내 삶이 힘든 것에 대한 합당한 천성적인 이유' 를 대기 위해서라면 굳이 검사를 추천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보다는 검사를 통해 지능 지수를 비롯하여 나의 마음 상태와 특징을 파악하고, 이를 고려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내 마음에 가장 잘 맞는 방법' 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시도록 검사를 추천 드립니다.

잘 되었든 그러지 못했든, 이미 주어진 결과에 대해 그것이 잘 된 이유, 못 된 이유를 붙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정답으로 정해진 이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인을 찾아내느냐 보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내가 오늘 '실제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냈는지 에 관한 것입니다.

지치고 막막한 사연자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합니다. 그만큼, 한 번 깊이 숨을 고르고 찬찬히 마음을 가다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삶이 마음같지만 않게 흐르게 만드는 나의 천성은 무엇일까' 에 관한 생각 보다는, '이러한 마음의 특징이 있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를 떠올려 보시고, 이를 실천하는 하루를 보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연자분의 그러한 하루를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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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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