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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과, 나와 맞지 않는 것은 별개

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아도 실행이 잘 되지 않을 때;두두의 마음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 가지 고민들로 걱정을 하다가 유튜브 구독을 하게 됐는데 마침 방금 전에 올려주셨던 영상 (열심히 하고는 싶은데 하기 싫은 마음만 든다면) 에 매우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이제 제가 어째서 도망치고 싶은지는 알았어요..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내담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엔 없는걸까요?

도망가고 싶지 않지만 너무도 두렵고 하기 싫고..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가면 결국에는 너의 의지의 문제를 나더러 어쩌라고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약을 먹어서까지 저의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을 억제하며 미래의 이득을 쫓게 하시지는 않을거 같아서요..

결국 나 자신의 문제인건데 삶을 원하는대로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은걸 넘어서 제대로 되지가 않아 요즘 좌절을 자주 하곤 합니다. 높은 목표를 쫓는 것도 아닌데도요.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현재 웹퍼블리셔가 되고 싶어서 국비학원에 다니고 있고.. 선생님은 친절하시지만 수업진행이 조금 빨라 부지런히 나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혼자 공부하고 과제를 해내야할때만 되면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분명 평일에 다 함께 공부할 때는 그냥저냥 했음에도 불구하구요.

나름 맞을 것 같아서 택한 분야인데.. 제가 너무 쉽게 포기하려고만 하는 것 같고 제게 맞는 일이 이젠 없을 것만 같고 얼마 없던 자존감마저 소멸되어 가네요. ㅠㅠ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두두의 마음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주신 글에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저 뿐만 아마 많은 분들께서 주신 사연에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는 이유는, 대개 그 일을 통해 주어지는 결과, 과실이 우리에게 좋기 때문입니다. 월급, 사업소득, 수상, 합격 과 같은 결과물들은 본능적으로 좋다고 우리의 마음에 인식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인 공부, 출근, 노동, 고민, 낮은 합격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 과 같은 것들은 본능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듯, 나와 내 삶에 좋은 것이라 충분히 학습하고 조건화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일들은 마음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되는 것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은, 사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만 본능에는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생성합니다. 하기 싫은 감정, 불안, 이 일이 왜 도움이 되지 않는 지 설명하는 구체적인 생각들 같이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한 가지 본능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불편한 감정이 드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는 인식입니다.

마음에 불안과 혐오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본능에 내재되어 있거나, 트라우마 등을 통하여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등한 정신작용이지만 그에 대한 이득은 본능에 각인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공부에 대해 불쾌한 감정과 생각들을 만들어내 우리로 하여금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물론 학습의 즐거움, 혹은 공부를 통해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즐거움이 반복하여 학습되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또 다른 본능적인 원칙인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를 따르다 보면, 적어주신 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불편한 마음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사람마다 조금 더 디테일한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과제를 하기 힘든 마음속에는 그 과제를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평일 동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이어왔던 것에 대한 강한 반발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내 마음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도록 움직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싫은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억지로 이끌면 이끌수록 반발심이 거세져,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나날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했던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나의 마음도 납득할 만한 가장 작은 일을 시작하기.’ 였습니다. 글쓰기로 말하자면 '한 문장 쓰기' 였지요.

저도 사연자분처럼,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오랜 세월동안 한 문장의 글도 쓰지 못하며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마음을 돌아보며, 오늘은 무엇을 쓰겠다. 어떤 꼭지의 글을 쓰겠다, 언제까지 어떠한 숙제를 완료하겠다는 목표가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버거움 때문에 제풀에 저를 지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었어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쓰자, 오늘은 한 단락의 문단을 쓰지, 라는 목표 대신 우선 컴퓨터를 켜 보자, 한 문장을 써 보자, 그렇게 다짐을 하고 실천에 옮겨 보았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드는 날이면, 우선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하는 것만을 하였습니다. 글을 한 편 써야겠다는 생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대신 우선 노트북을 켜고 한 문장만 쓰자, 라 다짐하였습니다. 다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짐을 생각으로 되내기 전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도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만 쓰고는 결국 글을 쓰지 못했던 날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서 쌓였던 생각들이 결국 한 꼭지, 두 꼭지의 글이 되어갔습니다. 어차피 계획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 차라리 '안하기 힘들 정도의 작은 것'을 시도하며, 거기에서 무언가가 더 이어진다면 그것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때로는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는 날, 때로는 한 문단의 글을 쓰는 날, 때로는 두 세편의 글을 쓰는 날들이 천천히 쌓여가다 보니, 제 '본능' 도 기쁘다고 인식하는 일들도 조금씩 제 삶에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쓰는 과정이 ‘본능적으로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귀찮을 때도 있고, 그 시간에 철지난 티비 영화를 틀어놓고 소파에 푹 파묻혀 늘어지고픈 마음이 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써야 하는데 이러면 안 돼, 라고 마음을 다그치기보다 일단 책상에 앉아는 볼까, 한글 프로그램을 켜는 볼까, 그렇게 지금 해 볼만한 작은 일 부터 시작해 보곤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버겁고 눈물만 난다면, 혹시 '해야 되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지' 라는 버거운 생각으로 마음을 다그치고 있진 않은 지, 그로 인한 마음의 반발심으로 더욱 부담을 느끼고 계신 것은 아닌지 돌아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버겁고 하기 싫은 것은 불성실이나 문제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는 것, 그러한 마음을 안고서도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생각보다 앞선 행동으로 해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그러한 과정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런 마음까지도 이해해 주고 다독이며 하루를 보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생각을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주말에는 못하는 마음' 을 다그치기 이전에 '평일에는 하는 마음' 을 인정해 주고 또 격려해주시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함께 넌지시 전해 드려봅니다. 아무쪼록 고민에 조그마한 실마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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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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