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잘 읽고 있습니다. 불안에 잠식되기 전에 그게 정말 일어날 일일까 되짚어보다가도 또 어느 순간 하나의 키워드가 생각나면서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병원을 가야하나 생각 중입니다. 저에겐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구요. 그 친구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친구가 암에 걸렸고, 치료 모두 잘 견뎌준 애인데 이번에 또 재발이 되어버렸네요. 친구는 괜찮다고 다시하면 된다고 하는데 너무 의연한 게 오히려 저는 마음이 무너질 거 같고 너무 불쌍해서 정말 심장을 누가 쥐고 있을 만큼 아프고 토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평생 함께 하고 싶은데 자꾸 제 머리는 죽음 , 미래의 우리, 십년 후 이십년 후 이런 게 생각나면서 또 가슴이 철렁하고 소화가 안 되고 눈물이 자꾸 나요. 사실 혼자가 되는 게 너무 두렵나 봐요. 제 마음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 친구 앞에서 제가 너무 울어서 오히려 마음잡고 있는 애인데 부정적인 영향만 줄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이런 돌고 도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요.
두두의 마음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과의사 이두형 입니다. 먹먹히 사연을 읽었습니다. 지금 사연자분께서 느끼시는 마음을 짧은 글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버겁고 막막한 마음에 대해 깊은 위로를 먼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그 버거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을까, 좀 더 두 분의 행복을 더해드릴 수 있을 까를 생각하며 답변을 적어 봅니다. 여러 번 사연을 읽으며 제게는, 사연자분께서 느끼시는 부담이 전해졌습니다. 그 부담이란 흔히 부정적이라 간주되는 마음, 즉 슬픔, 눈물,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과 같은 마음이 상대에게도 힘든 감정을 유발해 그를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입니다. 혹 사연자분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감정들이 그 사람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병을 깊게 할 것이란 걱정이 그 아래에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환자에게 아픈 마음이나 부정적(이라 간주되는) 감정들을 드러내면 안 되고, 선하고 행복하고 밝은 기운을 전해주어야만 한다는 이러한 마음은 난치병을 앓거나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환자분들의 가족, 지인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을 걱정하고 애도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마음입니다. 삶은 기쁘고 즐거운 시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사랑이란 좋고 편안하며 행복한 것만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 혼재되어 있는 삶을 온전히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픈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내가 슬퍼하면 그는 더 힘들고 버거워 할 거야, 나는 그 앞에서 늘 웃고 힘이 되는 존재여야 해,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이러한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자연스러운 슬픔을 억지로 누르고 인위적인 웃음으로 덮으려 할수록 나의 내면의 슬픔과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갈 것입니다. 마음은 '조절, 컨트롤' 의 대상이 아니며, 무리한 긍정만을 그에게 전하는 것이 그를 위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만약 입장이 반대가 되어 사연자분이 병을 이겨나가는 입장이 된다면 어떨까요. 남자 친구분께서 자신의 슬픔과 걱정을 어떻게든 마음속으로 깊이 숨기고 그저 내게 좋은 말과 격려만을 해주기를 바랄까요? 아마 그보다는 좀 더 진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함께 한다는 느낌을 더 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는 것도 위로가 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 주고 아껴준다는 느낌 역시 어떠한 위로보다도 깊은 진심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연자분의 걱정과 불안, 슬픔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마음이라 스스로 먼저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해하기만 하면 그러한 감정이 사라진다, 힘든 마음이 소멸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살다보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존재한다는 그 야속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연자분의 마음을 다독이는 첫 단추라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두 분이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예컨대 치료를 받고 몸을 관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일이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시간이 지나 남자친구분의 경과가 어떻게 진행이 될 지는 남자친구분이나 사연자분의 소관은 아닙니다. 한 달 뒤, 1년 뒤, 10년 뒤 두 분과 두 분의 관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역시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두 분이 사랑하는 사이시라는 것이며,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두 분이 함께하시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 지에 관한 것입니다. 내일 데이트 때는 남자친구분과 무엇을 먹을 지, 오늘 통화를 하시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 지, 주말에는 어떤 추억을 쌓으실 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지에 관한 것입니다. 나이나 관계의 깊이를 모르지만 결혼이나 그 다음 생에 대한 생각도 지금 당면한 일이라면 지금 서로가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통해 고민을 하시되, 그것이 아니라면 불확실한 것들이 확실해질 때까지 미루셔도 좋습니다. 은연중에 우리는 고민을 시작하면 그에 대한 답을 완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고민이란, 고민을 하는 시점에는 그 답을 알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삶입니다. 사연자분의 마음도 마찬가지겠지요. 남자친구분의 경과가 앞으로 어떨 지,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 지, 두 분을 둘러싼 주변의 생각은 어떠할지... 생각을 거듭할수록 답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더 많습니다. 사연자분의 마음 역시 '답이 내려지지 않음' 이 자동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해지지 않는 답을 생각으로 결론짓고자 답이 없는 생각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건 아닌지를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혹 그러시다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하나하나 구별해 보세요.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답을 내릴 수 없고,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마음을 보듬어 주신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답이 없는 고민에 몰입하는 대신 나의 마음을 지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 두 분의 시간을 어떻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채워갈 것인지에 대해 기울여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여 자연스러운 마음일지라도 우울과 불안이 너무 심하여 함께하는 행복으로의 몰입을 방해하고 일상과 관계를 이어가는데 너무 고통스러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부담을 덜기 위해서, 속 깊은 고민과 아픔을 털어놓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신과 진료를 권해드립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두 분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 함께하는 따뜻함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