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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전이감정. 두두의 마음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정신의학신문에서 선생님 글 보았습니다.
쓰신 글을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선생님께 마음에 닿는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싶어 절박하고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겨봅니다.

저는 주부입니다. 남편과 시댁과 불화로 우울증이 심해졌고 불면증까지 생겨 병원을 가게 되었어요. 진료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봤을때부터 호감을 느꼈습니다. 따듯하고 자상한데다가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말을 당당하게 하시는 모습에 감명 비슷하게까지. 상담을 계속 받으면서 선생님이 점점 더 좋아졌고. 나중엔 감정이 너무 커져서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도 선생님의 마음을 받고 싶은데 그럴수 없으니 속상하고 완벽해 보이는 선생님이 부럽기도 했어요. 선생님이라면 힘든 상황을 잘 헤쳐나갈텐데..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거 같아요.

선생님 가정이 부럽기도 했어요. 평생을 밋밋하게 살아온 제가 그렇게 강렬하게 누군가에게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당황도 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이 혐오스럽기도 했고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 이성적인 감정이 든다 말했고 선생님은 보통 선생님들께서 말하시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럴 수 있다고 얘기 하셨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은 원래 제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얘기를 들어도 마음은. 어렵더군요.선생님을 보는게 너무 고통스럽고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더이상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 병원에 안 간지 일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머릿속엔 온통 선생님 생각 뿐입니다. 많이 보고싶고 무엇을 해도 선생님과 연관이 돼요.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거라 생각했는데 더 생각나고 우울해집니다. 이런 비합리적 사고와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어요. 뇌를 도려내고 싶기도.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감정을 어떻게 잘 처리할 수 있을까요. 도움 부탁드립니다. 제가 깨닫고 노력해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전이감정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저에겐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더. 저는 결혼 전에 만난 전 남자친구를 결혼후에도 오랫동안 잊지 못했습니다. 지금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그 남자친구와 짧은 연애를 끝내게 되었는데요. 병원 선생님을 만나기 전엔 예전 남자친구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요즘 큰 아이가 저에게서 떨어지는 것 같아 슬프고 불안합니다. 저는 누군가로 계속 채우고 싶은 걸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가 창피하고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글 남겨 봅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편지)


안녕하세요. 정신과 의사 이두형입니다. 답변에 앞서, 말씀 주신 그 감정이 잘못되었거나, 부끄러워 숨겨야 하거나,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감정이 아닐 수 있음을 꼭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과거에 내게 강렬한 감정을 남긴 대상과 유사한 다른 대상을 만났을 때 이전에 경험한 느낌과 감정을 새로운 대상에게 투영하는것, 그리하여 과거의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을 전이라 합니다. 딱딱한 직장 상사 앞에서 어릴 적 엄하고 무서웠던 부모에게 느꼈던 두려움을 느낀다든지, 항상 나를 예뻐해 주고 아껴주던 선생님과 비슷한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전이는 종종 충분히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연관됩니다. 늘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지만 그러한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성장한 성인은, 그 부모와 유사한 대상을 만났을 때 이전에 받지 못한 사랑을 그 대상으로부터 채우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이 감정은 마음속 무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경우가 보통입니다.

주치의, 특히 정신과 주치의는 종종 이러한 전이 감정의 대상이 됩니다. 정신과 의사는 친한 친구, 심지어 가족에게도 하기 힘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인 동시에, 다른 사회적 관계와 달리 마음의 회복을 위한 일관된 지지와 통찰을 제공합니다. 환자분들의 마음속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종종 매우 따뜻하고 늘 한결같이 나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특히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고 이로 인해 늘 아픔을 견디며 살아오신 분들에게 정신과 주치의는 이러한 아픔을 해결해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이상화되기 쉽고, 이러한 이상화는 종종 연심으로 이어집니다.

사연자분께서는 짧게 교제하신 남자친구분, 그리고 아드님께도 유사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신다고 언급해 주셨는데, 이는 아직 알지 못하는 사연자분의 깊은 마음속 무의식이 작용하여 그러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감정이 느껴질수록 이를 주치의 선생님과 편안히 공유하시고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교과서적인 전이에 대한 설명을 넘어, 그러한 감정이 어떤 무의식으로부터 발현된 것인지, 그러한 감정이 느낄 때의 내 마음은 어떠하고 나 자신은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것은 어떤 나의 삶의 경험과 연관이 되어 있고 그러한 경험들은 지금까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는 어떨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전이 감정이 마음을 탐색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뜻은 그 감정이 힘들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나는 이루어지기 힘든 그 감정 앞에서 왜 그토록 힘든지까지도 면담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과정이 좀 더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사연자분의 경우에, 그러한 회피라는 대처 방법이 사연자분이 원하셨던 평온함을 실제로 가져다 주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잊으려 할 수록 더 떠오르는 생각들, 누를 수록 더 커지는 감정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더욱 고통스러우셨던 건 아닌지 염려도 됩니다.

무의식과 연관된 감정들이기에 이를 홀로 감내하거나 다루는 것은 본디 버거운 일입니다. 느끼시는 감정이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줄 정도라면, 꼭 원래의 주치의 선생님과의 진료가 아니어도 좋으니 전문적인 상담 진료를 시행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단순히 주치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넘어, 나 자신이 그렇게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이유에 대해 통찰을 넓혀가다 보면 바라시던 평온에 닿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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