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Jan 24. 2021

어떤 그럴듯한 개념도 나의 인생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심리학적 지식을 접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선생님, 아무래도 전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 같아요. 나무위키를 보면 이 성격은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대요. 전 앞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나요?”

  지금부터 이어지는 긴 글은, 블로그에 달린 이 댓글 하나에 대한 장황한 답변이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육원을 운영하며 아이를 돌보는 독지가다. 다른 한 사람은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최대한 관계를 회피하며 성장하였고, 아직 특별한 사회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면담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 유사한 경험이 발견된다. 둘 다 사별, 이혼 등으로 부모가 직접 양육을 담당하지 못하고 조부모 등 다른 양육자의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공통적으로 어린시절 늘 보호자에 대한 결핍을 느꼈고 부모의 품을 그리워했다.

  자,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과 삶을 심리학적으로 풀어간다면 어떨까. 전자의 경우에는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적 개념을 빌려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는 부모의 부재와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보상하기 위해 또래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몰두했다. 그러한 관계로부터 그는 타인과의 유대감으로부터 오는 안정감과 실제적인 도움 같은 장점들을 반복학습 하였고 이를 통해 대인관계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정적 강화를 얻었을 것이다. 그의 열등감은 오히려 그가 타인을 배려하고 관계를 추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고 훗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승화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불안정한 애착 형성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안정된 상을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적절한 타인과의 교류를 경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적 교류 기술을 습득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려움을 안고 이어가는 관계의 어려움은 불편한 관계의 연속으로 이어져 더욱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두 케이스 모두 실제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다. 어떤 설명이 더 잘 들어맞는지, 이 둘 사이의 디테일한 부분은 어떻게 달랐는지 (전자의 양육자는 부모 못지않게 안정된 애착관계를 제공하였다거나, 후자의 경우 또래 관계, 교육자와의 관계에서 반복된 트라우마가 있었다거나) 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부재' 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라는 주된 심리적 역동이 반드시 같은 결과물, 같은 슬픔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인간의 삶을 이루는 사건과 변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일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이 각각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당연하다 할 만한 이 사실을 굳이 주지하는 것은, 우리가 종종 이를 간과하고 지엽적인 삶의 지점과 단편적인 심리학적 지식을 통하여 마음과 삶 전체를 정의 내리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면담, 전문 서적 등 제한된 정보로 세상과 교류하던 심리학적 개념들이 교양서, 웹 자료, 유튜브 영상 등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는 고리타분할 정도로 익숙한 개념이 되었고 가벼운 심리테스트나 MBTI 성격유형처럼 딱딱하고 지루한 심리적 개념들이 즐겁고 쉽게 퍼지고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심리적 개념들의 주요 기능과 우리에게 주는 쾌감이란 스스로를 설명해 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우울하거나,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 라 늘 고민했던 마음의 지점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그랬구나.’ 라는 명쾌함은 반갑다. 우리는 늘 설명을 원한다. 전생의 업이나 사주팔자 때문에 마음이 그렇다고 해도 솔깃해하는 우리에게,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검증된 매력적인 체계로 마음을 풀어내는 학문적 개념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마음을 풀어내는 학문적 개념들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설명의 가능성이 주는 즐거움과, 미처 모르던 우리의 마음 일면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삶이 좀 더 매끄러워지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면담을 하거나 sns를 통해 질문을 받을 때면 종종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선생님,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증상을 진단기준과 비교하면 경계성 성격장애와 완전 들어맞아요. 이건 치료가 거의 안 된다 던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는 불안정 애착의 소유자 같아요. 어릴 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거라던데,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저는 그럼 앞으로도 사랑을 할 때 늘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학문적 개념이란 정교히 설계된 상황 내에서 제한된 환자 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모든 삶의 변수를 담아낼 수 없다. 성장 과정에서 일관된 양육자의 애정과 관심이 부재하는 것과 불안정한 애착으로 이어진다는 경향성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린 시절 양육자로부터의 애정을 갈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불안정 애착의 소유자가 되어 불안정한 대인관계를 이어가게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관계에서 어긋남의 아픔을 겪을 수도, 학교나 직장과 같은 인생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상황에서 타인이 나를 배척할 것이란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에 심리학적 개념을 적용하여 ‘내가 어릴 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랬구나.’ ‘나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쉽게 스스로를 단정 짓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그 시점부터 그러한 경험들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현상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고유하고 또 문제적인 속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그런 성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원래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어, 나는 앞으로도 관계로부터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 라는 생각들이 점점 강화된다. 그렇게 강화된 생각들은 내 삶을 행복하게 할지도 모르는 관계의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회피시키고 물러나게 한다. 마음을 치유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된 심리적 개념들이 스스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편향된 확증을 통하여 오히려 공고화시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할까. 또 그 중 얼마나 를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기억, 내가 아는 나 자신, 내 삶이란 실제의 우리, 실제의 삶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 속 기억과 감정들을 더듬다 보면 깊이 망각하고 지내던 생각이나 경험들이 몇 달, 심지어 몇 년의 면담 끝에 처음으로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볍게 소비될 분량과 깊이의 심리학적 개념으로 ‘나는 중증 우울증 환자야, 경계성 인격의 소유자야, 성인 ADHD 환자야.’ 라 단정 짓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능력과 행복의 가능성을 가둘 수 있다.

  혹시 마음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불안정한 애착이기 때문에 앞으로 깊은 사랑을 하기 힘들다고 정의 내린 적은 없는지, 나는 경계성 인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상처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그러한 개념들이 ‘나는 이렇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라는 평가와 체념 대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라고 그 개념들을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 지를 살피는 유용한 도구로 삼길 바란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자면, 심리적 개념의 도구들을 스스로를 평가하고 정의내리기 위한 수단 이 아닌 지금 나의 하루, 내가 하는 행동을 관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당신에게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는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회피적 성격장애 환자야.’ 라는 정의를 내리고 스스로가 얼마나 미숙한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대신 ‘내 마음속에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타인이 나를 거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많이 되고 말이 잘 나오지 앉았을 수 있겠구나.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 보면 좋을까?’ 라며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나친 일반화를 주의한다면 심리학적 개념들은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맛을 더해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다만 이러한 지식들을 접할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설명도 온전히 당신이라는 우주를 전부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서두의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짧은 댓글로 나열할 만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당신이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인지, 그렇지 않은 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누구나 그렇듯 당신과 당신의 삶도 완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심리학적인 개념들도 그 불완전함을 이유로 당신의 오늘을 전부 정의하진 못하며, 더더욱 감히 미래의 당신의 불행을 예견하진 못한다.

  그러므로 마치 당신이 앞으로 불행하도록 점철된 사람처럼,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글이나 관념들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 너무 괘념치는 않아도 되겠다. 당신이 학문적 범주로 어느 질환 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지를 판단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늘 언제든지, 얼마든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s://m.blog.naver.com/dhmd0913/222131765942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769083493

https://m.blog.naver.com/dhmd0913/222037782063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투스 타자기 하나, 손열음의 연주 한 곡 만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