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18. 2021

굳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한 정신과 의사의 마음 관리법



  ‘남의 힘든 마음 들어주는 정신과 의사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제법 자주 듣는 질문이다. 물론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 마음관리에 관한 부분도 있다. 환자가 쏟아내는 생각과 감정, 마음의 홍수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되 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른다. 그래야지만 진료실을 찾아온 그에게 가장 알맞은 도움을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질문의 의도는 그런 진료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도 분명 성질이 뻗칠 건데 그럴 땐 어떻게 해? 라는 개인적인 차원에 대한 것일 테다. 그래서 지금부터 적어 갈, 그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모든 정신과 의사가 공유하는 교과서적인 방법이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감정을 대하는 관점이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요?’ 라고 누군가가 묻는 다면 나는 곧잘 이렇게 대답하며 웃는다. ‘굳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말장난 같다. 이는 화를 쌓아두면 병이 된다고 면담 때마다 말하는 내가 정작 자신은 그저 힘든 마음을 쌓아두고 참기만 한다는 말일까.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을 만큼 삶이 평탄하고 무난하다는 배부른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제 감정 따위에는 도가 터서 그런 고민자체가 필요 없다는 시건방진 소리일까.

  모두 아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드느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내가 살아가며 행하는 것들, 나의 삶을 사랑하고 행복을 위해 하는 것들에 대해 ‘스트레스 해소용’ 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스트레스라 표현되는 마음은 힘들다는 느낌, 불쾌하거나 불편함을 주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의미한다. 원하는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중요한 사람에게 오해를 사거나 그와 갈등을 빚을 때, 주어진 능력과 시간을 넘어서는 일들이 마음을 옥죄거나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이 마음에 가득할 때 와 같은 마음을 우리는 스트레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해소한다는 것은 어떠한 행동이나 계기를 통해 이러한 기분을 반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을 듣거나, 친한 친구와의 통화로 한바탕 고민을 쏟아 내거나, 볕 좋은 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뷰를 즐기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거나 ... 그런 일들을 통해서 마음에 쌓인 불쾌한 생각과 감정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 했어, 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런 시도는 대개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내 삶의 경험을 통한 결론이었다.



살아오며 축적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이를테면 피아노를 치거나, 농구를 하거나, 커피를 내리거나, 바다를 보러 떠나는 것과 같은 방법들은 거친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에는 대개 소소하고 미약하다. 이것들에 스트레스를 해소법이란 이름을 붙이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그 이름과 같은 목표를 잘 달성해주진 않는다. 중고 서점에 들러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괜찮아져요, 참 멋진 말이고 실제로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정도의 잔잔함으로 말미암아 편안해 질만한 일이나 감정이었다면 그냥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반대로 정말 버거운 마음의 짐이라면 그 정도의 소소함으로 잘 무마되지 않는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으면, 즉 불편한 느낌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좀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쾌락, 혹은 충격적인 회피를 시도한다. 진탕 술을 마셔 일시적이나마 그러한 기분을 망각하고 이를 여흥으로 돌리거나, 맡고 있던 모든 책임을 던져버리고 몇 달이고 여행을 떠나거나, 그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아예 단절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그러한 방법들은 때때로 힘든 마음을 소멸시켜주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들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반드시, 어떻게든 불편한 느낌이나 생각, 감정은 마음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관념 자체, 스트레스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마음 자체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이다.

  스트레스를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 숙제, 풀어야 할 문제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사라질 때 까지 우리는 이에 대해 연연해야 한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의 소중함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우울, 불안, 초조함을 없애기 위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무의식적인 관념에 따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가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무마시키는 지 그렇지 못한 지’ 만을 따지게 된다. 한 번 뿐인 삶의 순간들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지금의 소중함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싫은 마음의 부분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멸시키고 있는 지, 그러한 마음들이 아직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대해서 만을 계산하게 된다.

  바닷가 앞에 선다고 해서 세상과 사람에게 데인 마음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보는 것과 지우기 힘든 마음의 아픔 있다는 사실은 서로 연관이 없다. 파도 앞에 선 상쾌함을 계기로 지금 마음이 얼마나 괜찮아 졌는지를 확인하려 든다면, 애석하게도 마음은 충분히 괜찮아져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마음으로는 바다를 보아도, 커피를 마셔도, 사람을 만나도, 운동을 해도 늘 마음이 괜찮지 않고, 종국에는 어떻게 해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막막함, 힘든 감정에 갇힌 느낌만이 남게 된다.

  그보다는 그 고통도 존재하고 이 아름다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어떨까.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바다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앞에서도 그 아픔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되새기겠다는 말과 같다.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바다를 찾지 않고,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찾으면 어떨까. ‘살다보면 마음 같지 않은 순간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아픈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며 힘든 마음을 다독여주되, 그 마음 그대로 눈앞의 아름다움에 젖어들면 어떨까.

  적색, 보라색의 옅은 물감을 흩뿌린 듯한 노을 지는 늦겨울 바다의 풍경 앞에 설 땐, 그러한 슬픔을 얼마나 잠재우는 지를 가늠하지 않고 그저 그 바다가 전해오는 감동 그 자체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에 대해 연연하든 그렇지 않든 불편한 감정은 풀릴만한 상황, 혹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스러진다. 이는 역으로 힘든 감정을 유발한 삶의 질곡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다른 것들로 이를 무마하려는 시도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러한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고 나니,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순간들이 고작 이러한 기분을 반전시키는 도구로 간주되는 것이 아깝고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대화할 때는 농담처럼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굳이 스트레스를 풀려 들지 않는다. 대신 힘든 마음이 다른 소중한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바다를 찾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불편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원두 봉지를 펼쳤을 때, 그라인더에 콩을 갈았을 때, 물을 내릴 때, 마침내 입 안에서 그 수고로운 한 잔을 음미할 때, 그 네 번의 때 마다 달라지는 향을 즐기는 과정이 달가워서 커피를 내린다. 어두운 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삼기에 그 작은 행복은 너무도 아깝고 소중한 것이다. 우울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울할 때도 커피를 내린다. 어두운 마음은 그 마음 그대로 안고 한 잔의 커피만큼의 행복은 행복대로 온전히 느낀다.  

  슬픔과 행복이 뫼비우스의 띠 처럼 이어지는 것이 삶이다. 이런 삶에서 스트레스란 해소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은 우리를 슬플 때는 슬퍼서, 기쁠 때는 그 기쁨이 이미 존재하던 슬픔을 덮을 만큼 충분하지 못해서 슬퍼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힘든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이로부터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버거움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려 노력하는 대신, 모든 슬픔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하면 어떨까. 버거워하는 마음이 잘못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보듬어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있는 소소하고 소중한 것들에 몰입하면 어떨까.

  굳이 힘든 마음을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고, 아끼는 순간들을 슬픔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소모치 않으며 그 소중함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아니, 행복을 향하는 법이다. 만약 당신이 내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스트레스를 굳이 해소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행복으로 향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m.blog.naver.com/dhmd0913/222149118161

http://m.blog.naver.com/dhmd0913/222037782063

http://m.blog.naver.com/dhmd0913/221904243693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그 행동은 기분이 시킨 걸까, 행복을 위한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