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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24. 2021

Just because I choose to do

다짐을 실행하게 해 주는 마법의 주문



어느덧 2월의 마지막 주다. 매해 그렇듯 뭘했는데 벌써 3월이야? 란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예년처럼 많은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했고 그 중 몇몇은 이미 흐지부지 되었다. 그래도 올해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계획들이 잘 이어지는 중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기, 나만의 진료실을 마련하기, 하루 30분은 스스로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등..

몇 년 전만 해도 아이 없이 주말부부를 하며 평일 퇴근 후에 몇시간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상념을 펼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퇴근 후 아이가 잠드는 시간까지의 대부분을 아이와 노는 시간, 가사 노동에 할애하는 요즘은 그 때 보다 체력적, 심적 여유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전념치료를 공부하며 얻은 한 문장이 내게 큰 힘이 되어준다. 바로 “Just because i choose to do." 란 문장이다.

왜냐하면 그냥 내가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이 주문과 같은 문장을 마음먹은 일 뒤에 말꼬리로 붙이면 그 일을 이어갈 힘이 난다. “내일부터 30분 일찍 일어나야지.”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글을 꾸준히 써야지.” 라고 마음먹을 때 뒤에 just because i choose to do, 를 붙여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내일부터 30분 일찍 일어나자. 왜냐하면 그냥 내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한 문장이라도 꾸준히 쓰자, 왜냐하면 그냥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얼핏 보기에 덧붙이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힘을 준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왜 그렇게 많은 다짐들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거나 이내 중단되는 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30분 일찍 일어나자 란 다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내고 싶은 하루의 모습, 소중히 여기는 삶의 의미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내려든 채 해가 뜨려고 하는 어둔 새벽 창밖을 내다볼 수 있다든지, 그날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살펴볼 수 있다든지, 하루 중 가장 맑은 상태의 마음이 떠올리는 단어들을 글로 옮길 수 있다든지. 그런 소소하고 소중한 이유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다짐이 된다.

그런데 다짐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내 그것이 진짜 좋은 일인지, 가치있는 것인지, 힘들거나 손해되는 일은 아닌지, 자꾸만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꿀 같은 잠을 30분이나 줄이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아침에 제 때 제 때 일어나는 것도 힘든데 더 일찍 일어나는 게 가능할까. 괜히 컨디션만 망치는 비효율적인 시도가 아닐까. 어떤 변화를 도모할 때 마음은 그것이 어떻게 좋을지 이상으로 그 일로 인해 감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얼마나 힘들어질 지를 떠올리는 데 몰입하기도 한다.

그러한 분석은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뮬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상상은 보람보다는 고통에 민감하다. 다음날 이불을 벗어나려 할 때의 괴로움이 상상만으로도 그대로 경험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다. 그 일을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는데 단지 미리 예측하는 것 만으로도 제풀에 질리고 지친다.

운동하자! 라는 보편적이고 흔한 새해 결심도 비슷한 과정을 종종 거친다. 피트니스든, 수영이든, 걷기든 하루만 해 봐야지, 3일만 하고 그만두어야지 라 마음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몇 개월은 몸 관리를 해야지, 아니면 새해 다짐으로 꾸준히 걷는 것을 아예 평생의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야지 라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것이 운동이다.

그러나 그 다짐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온갖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오늘은 체력을 보전해야 하지 않을까. 한 1주일 정도 해 보았는데 특별히 몸이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귀찮은 운동을 지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저녁에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이미 퇴근 1시간 전 부터 운동하러 갈 생각과 버겁고 지치는 느낌, 그 대신 소파에 파묻혀 영화를 보는 아늑함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왜 해야 되는 지에 대한 분석과 운동을 하러가는 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귀찮고 힘겨운 느낌이 밀려와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익숙함을 지향하는 것은 일상을 이어나가는 동안 우리의 자원들 즉 시간,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여유 등을 적게 소모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일관성을 선호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어떤 변화를 시작하기 전 그것이 얼마나 내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줄 지 이상으로 그것이 내게 얼마나 손해가 될 지를 마음이 따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불확실한 이득의 가능성에 비해 명확하게 체감되는 손해에 대한 상상으로 우리는 변화를 회피한다. 오늘 하루, 지금의 내 모습, 나의 삶이 있는 그대로 좋아서라기보다 익숙해서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

하지만 이렇듯 변화를 피하고 익숙함을 맹종하는 마음은 애초에 그 변화를 위한 다짐을 만들어 냈던 의미, 가치, 기대, 일상이 개선되고 삶이 나아질 가능성 등을 망각하게 한다. 삶을 위해 떠올린 ‘이런 시도를 해 보자.’ 라는 생각에 대해 마음은 늘 평가하고 검토한다. 그 변화가 그다지 의미 없는 이유,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분석하고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버거움, 귀찮음, 아쉬움이 미리 경험되며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처음에 내가 느꼈던 동기나 의미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불편한 감정만이 남는다. 이는 결국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공의 시절 번아웃으로 깊은 무기력에 사로잡혔을 때가 기억난다. 글을 쓰거나 전공 서적을 읽거나 학회에 참석하여 면담 기법을 수련하거나, 하고 싶은 뜻 깊은 일들이 정말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피곤한데 그런 건 사치야, 찔끔찔끔 공부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가뭄에 콩나듯 생기는 휴일엔 잠이나 자는게 나아. 그런 생각과 감정에 압도되어 소중한 시간들이 핸드폰만을 뒤적이거나 티비를 보며 '익숙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익숙한 무기력은 더욱 심화되었고, 그럴수록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일상은 결코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만들어내는 하지 않을 이유, 하지 못할 이유와 그에 따르는 버겁고 지치는 느낌에만 몰입하여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길 반복했을 뿐이다. 그 대신 그냥 내가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라는 한마디와 함께 용기를 내 원하는 무언가를 시도해 봤으면 어땠을까.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시도하였으나 잘 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보다 짙다.

그 때를 아쉬워하며 후회가 되지 않은 오늘은 어떤 모습일지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한 문장이라도 쓰자 다짐한다. 글을 쓰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지금 잠들기까지 내가 쓸 수 있을만한 시간이 얼마나 될 지, 고작 한 문장 쓰는 것이 얼마나 내 인생에 의미가 있을 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 전원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꿀 같은 잠을 10분 줄여 글을 쓰는 것이 실제로 이득이 되는 일로 돌아올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 프로그램을 켜고 어떻게든 써 내리는 것이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이어나가고픈 마음에 내일도 30분 일찍 일어나 써 보자 다짐을 한다. 그 순간에도 마음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물어오고, 일찍 일어나는 피로와 버거움을 내게 전하려한다. 그러한 마음에게 나는 또 다시 그냥, 내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니까 라고만 답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시비비를 걸어오는 마음에 한 번 웃어주고는 알람을 맞춘다.

마음의 걱정과 달리 30분 일찍 일어나 새벽녘 창을 열 때의 느낌은, 물론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고픈 충동은 어쩔 수 없지만서도, 꽤나 상쾌하고 맑다. 그 기분은 이윽고 커피 한 잔, 글 한 줄이 된다. 내린 커피의 향 만큼, 그 향을 담은 문장 하나 만큼의 보람을 안고 시작하는 하루는 그렇지 않은 하루보다 아주 조금 더 마음에 든다.

Just because i choose to do, 간단한 이 한 마디는 익숙함만을 지향하는 마음의 함정에서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냥, 내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시도하는 변화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제보다 오늘을 아주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는 작은 힘을 더해주는 주문을,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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