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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Mar 24. 2021

오늘이 괜찮은지를 오늘은 알 수 없다.

잘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이라면.



점심 약속이 있어 차에 올랐다. 조금 늦어서, 익숙한 길이지만 최소 시간 경로를 확실히 하고자 네비게이션을 찍고 갔다. 본래는 봄 풍경이 예쁜 언덕길을 지나가는 경로라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안내해 주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전혀 엉뚱한 길이 나왔다.

바쁜 하루 중 잠깐 풍경을 보며 쉴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시간이 빠듯했던 지라 되돌아 갈 수도 없어 그저 꾸준히 네비를 따라갔다. 그런데 웬걸, 10년을 산 동네에서도 처음 보는 샛길을 골라 더 높고 상쾌한 전망으로 네비가 차를 인도했다.

그 길에 접어 들기 전만 해도 '아니 익숙하고 잘 아는 길인데 뭘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네비게이션까지 찍고 오버를 했을까. 덕분에 좋은 풍경만 놓쳤네.'  자책이  꿈틀대려던 참이었다. '역시 사람은 꼼꼼히 최선을 다하는 게 좋아. 길 너무 좋다. 네비 찍은 나 칭찬해.' 라 귀신같이 태세전환을 하는 마음을 보면서, 우리 마음에 순간순간 찾아오는 판단이란 때론 얼마나 간사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되는 지, 얼마나 지금 당장의 짧은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불안정한 것인지를 새삼스레 되새기며 피식 웃었다.




우리는 늘 판단을 한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지 틀린지, 지금의 선택이 내게 최선인지. 그러나 그 판단에 대한 답은 바로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산 주식은 내일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오르면 오늘의 내 선택은 잘 한 것이고, 내리면 아닌 것이다. 전공이 너무도 나와 잘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처음에는 너무 잘 택했다 좋아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니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잘못 들어왔다 생각한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다 보니 인생 직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내리는 판단들이란 늘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일 뿐이다.

나는 지금 나에게 가장 좋은 오늘을 보내고 있는가? 모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선택들은 나에게 기대하는 결과들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알 수 없다. 나는 잘하고 있는가? 그 누구도 확인해 줄 수 없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존재는 1주일 이후의 나, 1년, 10년 뒤의 나, 그리고 죽음을 앞둔 나 단 한 사람 뿐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분석해도 지금에 대한 확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지나친 자신감과 확언은 되려 큰 실망과 좌절로 돌아오기도 한다.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여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현하는 과정이 삶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일도 사람도 인생도 마음대로만 될 수 없다는 당연한 현실 앞에서 그러한 원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삶을 이어나가지 않았던 나는 불안하고 혼란해졌다. 그러한 혼란을 잠재우고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지를 마음속으로 판단하기 위해 생각에 몰두하곤 했다. 그럴수록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 살아가는 방식이 옳은 지 그른지를 지금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외려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지금의 내가 옳은 지, 지금의 나는 어떠한 생각과 방법으로도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나 자신이 원하거나,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매진하면 되는 것이다. 잘 되든 못 되든 그것은 질책의 영역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삶의 한계로 받아들여야 할 영역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한 이후로 나는 지금의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잣대를 마음이 내게 들이밀 때 마다 이렇게 다짐을 하곤 한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지치지 않겠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지,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지를 고민하는 것은 내려두겠다고. 대신 무엇이 나의 삶, 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지를 고민할 것이며 어떤 순간이 내게 소중한지를 염원할 것이다. 때로는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하루를, 때로는 평생토록 기억할 만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지금 이 순간을 위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구태여 확신을 찾지 않으며 단지 그런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





오랜 무명기간 끝에 빛을 본 것으로 요즘 한참 이슈인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을 들어 보았다. 즐거운 멜로디에서 오랜 시간 무언가를 견뎌낸 이들의 마음이 전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1500일의 시간동안 그들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좌절을 반복했을까. 얼마나 많은 불안을 감내해 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지금의 내가 맞는지, 틀린지 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내게 소중한 일을 묵묵히 이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만약, 설사 그들이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더라도 그들의 삶은 이어졌을 것이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걸그룹 생활을 접고 바리스타 를 준비하려 했다던 멤버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험들은 힘이든 좌절의 교훈이든 어떤 식으로든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과거를 돌아본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후회되는 이전의 선택들이 마음에 밟힌다.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은 잠시 옆으로 내려두어 본다. 그 대신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던 그때의 이유들을 되새기며 그래도 잘했다, 고생했다 라 마음을 다독인다. 그리고 그 때는 오늘 하루가 의미 있을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라 초조하게 보냈던 나날들이 모여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어쨌든 오늘이 되었음을 새삼스레 자각해보고, 감사해본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 진료실을 꾸민다. 오늘이 미래에 어떤 하루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보내야 하는 하루, 혹은 보내고 싶은 하루를 쌓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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