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 번 더 상담 드려도 될까요? 기존에 직장에 대해 상담드렸는데 좋은 답변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번엔..대인관계 문제입니다. 저는 중고등 시절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습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친구가 없다고 느꼈고, 누구랑 조금 친해져도 금새 불편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까지도 아주 절친한, 단짝이나 친구가 있지는 않습니다. 제나이 마흔초반이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습니다. 현재는 남편이 제일 친한 친구인거 같습니다.
문제는 회사인데, 겉으로 보면 여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거 같아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이번엔 정말 좋은 언니, 좋은 동료, 좋은 사람이 되보자 노력을 합니다. 사수로서 옆에 직원도 잘챙겨주려하고, 저를 잘따르는 후배직원들을 보면 자존감도 올라가고, 여기저기 칭찬도 하고 자랑도 하고 다닙니다.. 근데 오늘 제가 그렇게 믿고 아끼던 제 옆 직속 후배와 여직원들이 저만 빼고 회식을 잡은 모양이었습니다. 여직원이 5명이고, 4인이상 가지 못해 저도 이전에 다른 직원들과 넷이서 맞춰 밥도 먹으러 가곤 했는데, 이렇게 같은 팀원인 5명중 저만 빼고 4명이 간다는 사실을 그들로부터 들었을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였습니다.
전 술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밑의 직속후배와 나머지 여직원들은 술을 잘먹습니다.. 그게 그 이유이더라구요. 늘 장난도 잘치고 워낙 스스럼 없이 얘기하는 선후배 관계이기도 해서 그들도 저에게 속일 생각은 없었고, 술먹는 멤버만 가기로 했다면서, 얘기하는데 저는 한대 얻어맞은 느낌였습니다. 사실, 술을 못먹기에 이해 할 수도 있는 부분였는데. 하루종일 화가나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예뻐하던 직속후배도 너무 미워 아주 불편한 감정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결국 퇴근때 제대로 인사도 안하고 혼자 휙 나와버렸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일을 곱씹고 되새기며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섭섭할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화가 나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후배에게 마음을 너무 준것인지.. 배신감에 마음이 화 투성이입니다. 저도 다른사람들 빼고 몇번 4명이 간적이 있으면서, 팀에서 저혼자 빠지고 그들끼리 술마시러 가는것이 왜이렇게 좌절스럽고, 우울하고 화나고 힘들까요.
제가 너무 집착을 하나요? 그래도 맞언니 인데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며 미성숙하게 대처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적으로 너무 티를 낸것도 부끄럽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제 인간관계는 뭔가 부자연스러운거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과 원장 이두형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대인관계는 늘 어렵습니다. 나의 마음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데,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은 더더욱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대인관계가 가지는 의미는 조금씩 변화합니다. 어린 시절, 다시 말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이 어려운 유아기, 소아 청소년기의 관계는 생존과 직결됩니다. 아이는 부모, 혹은 그에 상응하는 보호자 없이는 홀로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양육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은 매우 절박하고 두렵습니다. 친구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친구관계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에 반해 성인이 된 이후 만나는 관계는 이득과 손해의 측면이 주를 이룹니다. 성인은 누군가의 보호가 없이도 홀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연인이나 배우자는 조금 논외로 하겠습니다. 친구, 직장동료, 사업 파트너, 선후배 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기쁨과 위로를 주거나, 혹은 업무, 금전적인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함께합니다.
어린아이가 맺어가는 대인관계는 삶에 필수적이며 그만큼 절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성인기 이후의 관계는 비교적 담백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에서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느껴지는 듯한 소외감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지금의 성숙한 나, 월급을 받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타인의 도움이 절실하지 않은 성인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들이 마치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너무도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어린시절의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입니다.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속에 허전한 한 구석 정도는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서 지나치게 불안해지는 경향성,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경향성을 너무 탓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런 경향성이 어떻게 관계에 미치는 지를 잘 바라보고, 타인으로부터 그 마음을 위로받으려 하지 않고 나 자신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관점을 가져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유한 권한이자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나 역시 아무리 누군가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이 싫기도 하고, 반대로 그 사람이 아무리 나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나는 좋아하기도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린 시절과는 달리 더 이상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부분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월급을 받고,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시는 데에 직장동료와의 관계는, 물론 잘 지낸다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행복을 규정짓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관계 상의 불편함은 인생에서 존재하면 안되는 두려운 위기가 아니라, 살다 보면 있을 수도 있는 '불편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저 역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 제가 반기지 않는 사람 중에는 제게 (물론 저의 관점에서) 특별한 무례나 잘못을 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일 없이도 왠지 느낌이 잘 맞지 않거나 불편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특별히 제게 잘해준 적이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좋아하는데, 이유를 찾기는 힘듭니다. 그가 좋은 단편적인 이유들을 댈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 과정은 단순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파악하는 마음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주처럼 넓고 깊은 무의식이 상호작용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온전히 모두 알 수 없고, 더더욱이 이를 모두 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나의 통제 아래 있지 않는 것처럼,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역시 나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나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깃듭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지는 소중한 사람들이 깊은 마음이 더욱 감사히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을 인정하기 때문에 슬프고 두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얻고자 노심초사하고 무리했던 마음을 아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껴진 마음의 여유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할애됩니다.
'혹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개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이러한 질문을 품는 대상은 이러한 마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관계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문이 드실 때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기는 어렵다.' 는 사실을 되새겨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릴 지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마찬가지로 관계 역시 온전히 나의 의도대로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대하다 보면 여유가 생기고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첨언하자면 말씀주신 상황에 대해서는, 오히려 다른 분들이 술을 못하시는 사연자분을 배려하신 걸로도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 너무나 자동적으로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반복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모쪼록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가시는 데 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시는 작은 행복이 일상에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