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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책을 통해 많은 도움과 위안을 받는 독자입니다. 그간 용기가 부족해 사연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제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로 대하면 좋을지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글을 씁니다.

선생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인가요? 저는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느끼는 저는 굉장히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순적인 면모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한 곳으로 통합되어 있기보다는 이런가? 하면 저런 생각과 감정이, 저런가? 하면 이런 생각과 감정이 드는 사람이라 저도 저를 종잡을 수가 없고, 가끔은 파악을 하는 데 지칩니다. 늘 함께하는 양가감정이나 상반된 생각들이 떠오른다면 어느 쪽의 나를 받아들여 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오히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나 자신을 존중한다.' 같은 말들이 제게는 너무도 추상적인 이야기들로 받아들여집니다.

가끔 자신이 변덕이 심하고, 주관이 약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속상하고 싫어질 때도 있는 반면에 오히려 어떤 부분에는 확고하고, 자신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애초에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에 대한 답을 제가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곤란하게 다가옵니다.

유일하게 독서를 하고 있을 때만큼은 저의 마음이 안정됩니다. 다만, 글을 떠나서 제 삶을 살아갈 때면 여전히 저는 '보편성'에 맞춰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자꾸 저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고, 사회적인 성취나 좀 더 그럴듯한 결과를 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서 잘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사회성부터 시작해 대인관계, 태도, 말투, 나 자신의 성격이나 타인과 비교했을 때 발전의 정도, 세상에 맞춰진 저의 속도를 판단하고 제단하고 때로는 자책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혹 오늘 다른 사람들이 안 좋게 보거나 이상하게 느낄만한 언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매일 습관적으로 고민하고, 검열하며 시달립니다. 혹여 타인이 안 좋은 태도를 보이거나, 부정적인 신호를 보냈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잠시간 우울해져서 잠이 오기도 합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이렇게까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이유가 제게 있다고는 생각이 됩니다. 다만,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한들 같은 문제로 반복적인 실수와 자책, 안 좋은 습관들을 이어가는 저의 모습을 보면 이해하려 노력해도 한편으로는 좋은 감정이 들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한 저지만 가끔 자신을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제가 서글프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솔직한 자기표현, 감정표현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감정조절도 서투릅니다.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는 게 저에게는 정말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이고, 여전히 사회적인 상황에서 미성숙한 표현과 대처를 한 것 같은 날이면 좀처럼 발전하지 않는 것 같은 제 모습에 답답해집니다. 생각과 감정을 제때 표현하며 해소하거나, 그저 바라보며 잘 다룬다는 게 정말 막연한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여전히 서툴고 다양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지만, 지금의 저는 조금만 더 편안해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불편함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인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텐데도 제가 저에게 가장 엄격하고, 각박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마음 깊이 칭찬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앞으로도 되지 않을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다룰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항상 좋은 글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두형입니다. 주신 글에서 제 글을 아껴주시고 깊이 읽어주시는 마음이 가득 전해져 참 보람 되고 감사합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에 대한 답으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나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것, 그 사실 자체를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그저 그러한 것으로 이해하고 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 이 제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제 이야기를 먼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때로는 관대하지만, 어쩔 때는 저 스스로도 놀랄 만큼 편협합니다. 무한히 긍정적일 때가 있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어떤 감정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잘 다독이기도 하지만, 어떤 감정에 대해서는 바라보는 데에 애를 먹기도 합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이렇듯 내가 한마디의 단어나 문장으로 명쾌히 표현될 수 없다는 것, 어떠한 말도 나의 마음을 포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의 마음은 나의 마음대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나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외에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또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 네 마음을 알아야 한다, ' 또 나 자신을 마치 하나의 고정된 실체처럼 표현합니다.

잠시 생각을 돌려 과거를 함께 바라보겠습니다. 10살때의 나, 스무살 때의 나, 서른살 때의 나를 각각 상상해 보세요. 그때마다 나 자신과 내 삶을 바라보는 인식과 관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 나의 마음은 어떠하다, 내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관점은 늘 같으셨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인식은 매번 바뀝니다. 심지어 나의 생각과 감정, 경험 등에 따라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 변화하기도 하지요. 본디 나는 몇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미묘하며 다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삶과 마음을 몇 마디 말로 정의함으로써 완벽히 이해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부정적인 느낌이 자주 찾아올 때에는 '나는 소심한 사람, 소극적인 사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 사람과 친하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그러한 말에 나를 맞추며 부정적인 마음의 고리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아보시기에 앞서, 나는 한마디로 내 마음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닌지, 확고한 자아상 과 같은 언어적인 표현에 지나치게 빠져들었던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이 만들어낸 '보편적이고 평범하며 괜찮은 사람' 이라는 상에 나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많으셨던 건 아닌지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우울증이 있으면 비정상이니 마음이 우울하지 않아야 합니다. 심한 불안이나 공황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무기력하지 않고 활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많아야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데 불편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과 안정적인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이러한 상태로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때로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을 경험합니다. 원하는 일이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원치 않는 이별도 경험합니다. 이유 모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못하겠는 피로와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흔합니다.

내 마음이 때로는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때로는 원하는 바가 원하는 대로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힘든 마음이 찾아 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지금 나는 힘든 마음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 이러한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지켜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나 스스로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가지거나, 타인이 보기에 안정적이고 그럴듯한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다 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정상이지도 비정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그저 나' 가 원하는 삶, 바라는 행복이 보일 지도 모릅니다. 이를 향해 나아가며 느끼는 불편감은 비정상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불편한 것이며 이를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겠습니다. 세간의 시선과 기준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내가 원하는 삶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시도와 변화가 좋을 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관점들로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봐 주시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모쪼록 떠올리신 의문에 조그마한 영감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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