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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Oct 19. 2021

'내가 나인게 싫을 때 읽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 출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내가 나인 게 싫어질 때가 있다.

  형편이 어려워서, 마음의 상처가 많아서, 사랑을 얻지 못해서, 도전하는 시험마다 떨어져서,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는 꽤나 괜찮은 조건들을 충족했음에도 사는 것이 무료하고 허무해서, 우리는 자주 나를 싫어하거나 혐오한다. 조금 내가 좋아지려고 하면 이내 예기치 않은 좌절과 불안에 무릎이 꺾이는 일도 생긴다. 왜 그래야 할까,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언제 상처를 받을지 몰라 조마조마 하며, 혹은 이미 받은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며 고되게 인생을 밟아가는 것일까.

  힘들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생각과 느낌일 지 모르나 의외로 힘들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힘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과정이 삶이라면 애초부터 살아가기를 포기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힘들 때, 나를 미워하게 될 때, 삶에 회의가 들 때 우리는 여러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고민한다고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의문들에 오늘의 버거움이 더해지면, 막막함은 이내 부정과 냉소로 변모한다. '죽지 못해 산다' 는 느낌은 일상의 버거움을 배가시킨다. 소소한 나의일상,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 같은 것들은 그 답답한 무게감 앞에 뭉개져 버린다. 왜 사는지 는 잘 모르겠는데 산다는 건 참 지치는 일이라는 느낌이 일상을 지배한다. 그 느낌은 우울, 불안 같은 단어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 는, 조금 더 본질적인 슬픔이다.



  첫 책이 나오고 독자와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 서 힘들어요”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었는데 책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 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안아주며 ‘난 괜찮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했으나 그럴수록 더욱 더 자신이 미워지고 거부감이 들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자존감이란 이런저런 이유로 ‘나도 이만하면 괜찮 아’라고 애써 납득하는 것이라기보다, 때로는 스스로를 안아주고 이해해주기가, 사랑하기가 버거울 때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울었고 나는 화가 났다. 힘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어떤 과정으로 오히려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긍정 할 수 있는 확률은, 그 사람이 단 한 번의 실패나 실연, 상처를 경험 하지 않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그런데 왜 세상은 그가 매 순간 마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까. 언제부터 ‘자존감’이란 그럴듯한 단어는 그러한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해낸 사람의 특권 으로 인식되었을까.



  부처는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라 했고, 프로이트는 ‘여기 지금 (here and now)’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들의 ‘지금 여기’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나는 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행복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감정과 생각을 좋고 나쁨의 구분 없 이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는 이야기였다. 내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 은지에 대한 평가를 반복해 ‘좋은 나, 긍정적인 나’라는 인위적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다.

  좋고 나쁘다는 판단,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 들은 중생의 인 위적인 상(象)일뿐이니 휘둘리지 말라고 그들은 가르치지만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그런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 는 일이다. 초연해지기 힘들다면 적어도 힘듦이 존재한다는 이유 로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말라.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감정이란 온전히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며, 슬픔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늘 평안하고 기쁨에 가득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이야 기하며 그것이 행복이라 말한다. 똑같이 돈 문제로 버거워하거나 , 소중한 사람과의 갈등으로 눈물짓거나, 때로는 사소한 일로도 격한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치료자들 역시 내담자들 앞에서는 마 치 이미 그들이 완전무결한 마음을 손에 넣은 것 마냥 그 방법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방법이 있을까.



  ‘삶은 멋지다’, ‘어떤 사람이든 잘 들여다보면 참 괜찮다’고 이야 기하는 유명 저자, 스타 연사들의 메시지가 정말로 지금 당장의 배고픔, 혹은 가족의 해체와 같은 절박한 걱정이 가득한 이들에게도 동일한 ‘괜찮음’을 전하는지에 대해서 어쩐지 회의가 든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마음이든, 재산이든, 지위든, 사람과 사랑이든 무언가가 어느 기준, 어느 선에 도달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증명서 같다.

  그런 책과 강연에서 흔히 제안되는 문장 “사실 알고보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이야기에는 ‘너는 아직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잘 몰라서 그렇게 힘든 거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도 같다. 우리가 우리를 버거워하는 이유는 정말로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나는 당신이 수십 권의 심리학 서적을 섭렵하거나, 몇 달 몇 년의 낮과 밤을 보내며 고민했지만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었던 의문들, 내가 누구인지, 나는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살아가는 의미란 무엇인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답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함께 하려고 한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살아가는 용기보다도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밤 이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하루는 시작된다. 내일이 시작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현저히 높다. 그렇다면 나는 살아가는 것 이 어떤 의미인지, 차라리 죽는 게 나은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일상을 채우는 더 나은 선택지들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

  ‘생각’은 원인을 분석해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는 탁월한 도구 이지만 ‘사는 이유’ 같이 결론이 모호하거나, ‘마음의 아픔’ 같이 원인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있을 때는 무력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고민을 하며 끊임없이 힘든 마음속으로 침잠해 간다. 그보다 조금은 더 당신을 소중히 할 수 있는 시간 들이 존재한다.

  어딘가 나와 내 삶은 잘못되어 있다는 확신이 가득하다면, 앞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 고민을 반복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싫어질 뿐이라면, 스스로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하기’보다, 지금 눈앞의 하루를 괜찮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먼저 떠올려보자.



  서문을 한참 써내려 가던 어느 날, 진료 중 한 환자 분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선생님과 면담을 하면 어쨌든 내일이 시작될 것이란 느낌이 들어요. 죽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에요. '그냥 죽을까?’ 그런 느낌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살고 죽는 것에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왠지 말로 표현은 안 되지만, 그냥 살아가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또 한 주를 보내고, 선생님을 만나야지. 그런 생각을 해요.”

  그의 말에 ‘그래, 내가 책으로 전하고 싶은 건 말이 아니라 이런 느낌 그 자체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게도 이 느낌을 온전히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조심스레 건넨다.


(이두형,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 2021, 아몬드. 서문)







  첫 책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 덧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동안 제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진료실에서만 머물다 늘 꿈꾸던 작가로서 세상에 나와 좀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첫 책은, 서문에도 썼듯 혼자서만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마음의 이야기들을 나눠보고 싶다는 열망으로부터 쓰여졌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과 마음을 나누던 중, 늘 비슷한 질문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괜찮아 진다고 하던데, 왜 전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자존감이 있어야 행복하다는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릴 때 애착 형성이 잘 되어야 한다는데, 이미 과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괜찮아지나요?'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알려지는 개념과 관점들이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부족함만을 더 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책을 보면, TV나 유튜브를 보고 강연을 들으며 그 메시지를 따라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더욱 자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마음이 들어 쓰고 싶은 글들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아몬드 출판사의 대표님이 되신, 당시의 편집장님께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렇게 하나 씩 쓰던 글이 어느 새 또 한 권의 책이 될만큼 쌓였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도, 아무리 마음이야기를 쌓아도 평온과 행복은 막막하고 요원하기만 하셨다면, 이 책이 삶과 행복에 관한 조금은 다른 관점과 영감을 더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 설렘과 기쁨입니다. 모두가 읽어주신 당신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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