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신기하게도 이별은 늘 가을 문턱을 너머 이제 겨울일까? 를 고민할 때 즈음에 찾아왔었다. 가벼운 블루종 하나로는 부족하고 코트를 꺼내 입기에는 무거운 계절. 유독 나는 그 때 힘든 일을 겪곤 했다. 이별과 절망은 늘 가깝다.
그토록 힘들 때 너라도 곁을 지켜주면 좋으련만 그건 나의 욕심일 뿐, 힘든 일에 이별이 겹쳐서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음의 힘은 무한하지 않고, 삶은 늘 해결해야하고 대처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하는 일 마다 잘 풀리고 있는 사람과 상사의 극심한 질책에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저녁에 연인을 만나 나누는 대화의 질감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망한 업무로 인한 속상함은 날이 선 대화로 이어지고, 그러한 대화와 감정의 축적은 실연을 부른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왜 하필 지금 나쁜일이 또 일어날까 라 한탄하지만, 본디 힘든 일은 힘든 일 끼리 친하다.
살다 보면 내가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망칠 때가 있다. 소중한 이에게 더 괜찮고 부드러우며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내가 비참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비참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지금 힘든 이 마음이 너무 가련하여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데 몰두할 때가 있다.
나조차도 나를 견디기 힘든 시기를 내 곁에서 함께 견뎌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모든 만남은 세상 다시 없을 특별함으로 시작하여 그런 상투적인 결말로 끝을 고한다. 남는 것은, 세상에는 그 누구도 나를 버텨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그리고, 계절은 바뀌고 삶은 흐른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삶은 이어진다. 지금이 가장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역설적으로 삶이 더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영원히 내릴 수 있는 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료실에서, 블로그와 sns로, 요즘들어 부쩍 관계에 대한 슬픔, 고민을 댓글로 나누어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시기인가 보다. 바람이 낯설게 차가운 가을, 이별에 관한 생각에 젖어들기 쉬운 요즘이다. 그들의 고민과 눈물 속에서 과거의 나를 본다.
지금의 당신은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가 보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수식어는 나에게 어울리고, 모든 아름다움은 타인에게만 허락된 사치 같이 느껴지는. 나는 그러한 생각과 논쟁하거나, 억지로 당신의 생각을 소위 '좋은 쪽' 으로 돌리려 인위적인 노력은 하고 싶지 않다.
단지 당신이 떠올리는 모든 힘든 생각과 느낌에 '지금은' 이라는 말을 붙여 보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 내가 떠올리는 모든 아픔은 지금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느끼는 구나. '지금은'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처럼 느끼는 구나. '지금은' 내 인생이 모두 잘못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느끼는 구나. 지금은, 지금은. 오늘 하루가 어떻게 이루어질 지, 10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우리니까. 우리의 한계니까. 그리고 어떠한 말도, 100 년에 가까운 우리의 삶을 모두 포괄할 수 없으니까.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은 내일이 아닌 어제와 오늘까지에 대한 것 만이야. 단지 그동안 많이 아팠어서, 그 이별이 아파서, 지금은 아파하는 구나. 그렇게 그저 지금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면 좋겠다.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다. 인연이란 사람이 아닌 시절에 관한 것임을. 사랑에 때가 있다는 말은 비로소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비로소 충분히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기에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는 의미임을.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눈을 떠올리긴 힘들지만 매년 크리스마스는 꼭 그 날에 찾아온다는 것을. 그 때, 당신과 함께할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난 어떤 누구보다도 소중한 이 임을.
당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을 바보같이 보내버렸다 너무 아쉬워 마시길. 다가 올 당신의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할 단 한 명의 소중한 그 이는 아직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