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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07. 2022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관계가 어렵고 두려울 때 읽는 글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길에는 지뢰가 가득하다. 사람의 마음은 참 섬세하고 여리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해자기 되기도 한다. 그 미묘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 긴 세월 동안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 심지어 서로 좋은 감정만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기적같은 감사함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타인으로부터 배척받는 두려움은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에 더해 우리는 늘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배운다. 자녀가 모든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양육자의 욕심은 자연스러운 관계의 어긋남을 있어서는 안될 오류로 만든다. 사회는 잘 지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인 관계를 잘 지내야만 하는 것으로 교육한다. 그렇게 우리는 살면서 마주치는 관계들을 모두 잘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관계의 버거움은, 이렇듯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며 시작된다.


  면담 때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면 흔히 (100이면 100)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되돌아온다. "선생님, 그러면 직장에서 사람들과 아무렇게나 지내도 된다는 말인가요?" "속에 화가 부글부글하는데 교수님에게 나오는 대로 다 말해도 되나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닌가요?" 이러한 질문들 속에는 같은 한 가지 맥락이 숨어 있다. '살다 보면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관계가 분명 있는데, 누군가와 잘 지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건 그런 것들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지 않다. '관계를 잘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과 '잘 되지 않는 관계를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것' 을 혼동하지 말자는 것이며, 오히려 이 둘을 잘 구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이 책이 말하는 그 내용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지만 그대로 하기가 어려워 생기기 때문이다. 후회되는 관계, 힘든 사람 사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대인관계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풍요로움을 제공할 수 있는 지는 이미 교육으로, 책과 영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론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과 잘 지내는 것이 어떻게 삶에 도움이 되는지 몰라서 못 지내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버거운지가 문제다.


  우리는 대개 타인과 잘 어울리는 법을 알고는 있다. 그 때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 때 다르게 그를 대했더라면, 시간이 지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 좋은 답이 종종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답을 아는데도 관계를 풀어나가기 힘든 이유는 지나친 부담감이다. 잘 지내야만 하는데, 미움을 받으면 안되는데 어쩌지, 라는 당위와 강박은 늘 우리를 조급하고 무리하게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을 모른다기보다, 우리는 조급함과 무리함, 무력감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친구 중에 대인관계가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가 있다. 차분하고 예의바르며 주변을 두루 잘 챙겨 그를 아는 이들은 대부분 그를 좋아한다. 하루는 그런 그의 장점이 부러워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예전에 나는 사람이 무서워 햄버거를 주문하지 못했어."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자세히 들어보니 학창시절의 그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까봐, 또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까봐 늘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재수를 하며 그런 경향이 심해진 나머지 가게의 아르바이트 생들 눈빛만 보아도 자신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까 두려워 굶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객관적인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는 대로 구성된다. 특별한 불편함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지금의 그가 그 때의 마음을 돌아본다면 당연히 지나친 생각들이었음을 안다. 그러나 그 때의 그 두려움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했다. 그의 삶은 그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향하지 않는지를 살피게 만들고, 일에 쫓겨 진이 빠진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을 경멸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햄버거를 주문하려면 원하는 메뉴를 정하고 먹고 갈 것인지 가져갈 것인지를 결정한 다음, 아르바이트 생이 묻는 질문에 따라 그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간결한 정답을 택할 여유가 없었다.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알바생의 눈초리는 어딘지 모르게 나를 얕잡아보는 것 같아.' '말투가 조금 퉁명스러운데 내가 만만해서 그런 건 아닐까?'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걸 저 사람이 눈치채고 찌질하다며 속으로 욕하는 건 아닐까?'


  마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두려운 상황은 끝이 없다. 그러한 두려운 의문에 대해 모두 괜찮다는 답을 달 수 있어야지만 괜찮은 것이 아니다. 떠올릴 수 있는 두려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실제로 무언가가 잘못될 것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생이 나를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속으로 나를 경멸할 가능성이 0%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의 수 까지 모두 대비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나의 삶은 충분히 매끄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나와 보내는 시간을 편안히 느끼는지, 그렇지 못하고 불편해하며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나의 마음이 편안할때 상대방 역시 그러한 부드러움에 감응한다. 잘 보이기 위해서, 책 잡히지 않기 위해서, 미움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 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불안의 함정에 빠져든다.


  인터넷에 우스개소리로 '숨쉬는 과정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숨쉬기 노동이 시작된다' 는 글이 돈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지금 숨쉬는 것을 의식해 보라. 숨이 코로 들어오고, 목을 통과하는 때에 폐를 부풀렸다가, 다시 폐를 조이며 숨을 내뱉는 과정. 자동으로 잘 이루어지던 이 과정이 어색해지고, 노력이 필요할 것 같고,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은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관계도 이와 같다. 우리는 대개 건전한 상식과 서로를 위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대화를 하게 둔다면 관계도 그리 선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그 마음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늘 관계를 머리로 잘 풀어가려 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한 공손함을 보이다 되려 어색함을 부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무리하다 부담을 준다. 다음에 내가 할 말을 미리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대화의 흐름을 놓친다.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고민을 거듭하다 불편함에 압도되어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멀어진다.




  당신이 지금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마도 주위에 좋은 사람, 유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늘 무리한 대화를 반복하느라 부담을 주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그저 함께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슬픈 일에 진심으로 위로를 주며, 즐거운 때에 주위 눈치 보지 않고 가식없는 미소를 전하는 그런 사람이 당신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내일부터 애써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무리한 유머를 시도하는 부담감은 내려놓으면 어떨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감 육감을 총동원하여 그의 비언어적 신호를 파악하느라 제풀에 지치는 과정을 그만두면 어떨까.


  관계가 온전히 내게 달리지 않음을 이해하며, 마음과 마음이 어긋나는 일 역시 참으로 일상적인 일임을 깊이 받아들여 보기를 권해보고 싶다. 또한 잘 풀리지 않는 관계에 절망하는 대신, 소중히 이루어지는 관계에 감사해 보기를 제안하고 싶다.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가 고통이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관계에 지나친 완벽함을 요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긋남 역시 자연스러운 관계의 한 양상을 받아들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히 이어지는 관계의 소중함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다. 로또는 당첨되면 좋지만, 당첨이 되어야만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관계는 로또보다는 곧 잘 당첨이 된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배우자든, 동료든, 반려동물이든 우리의 삶에는 드물지만 소중한 이들이 존재한다. 그 드뭄 정도면 우리의 삶 하나 만큼의 행복 정도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다.





  그러니 부디 애쓰지 말기를. 관계에 대한 두려움, 조금 더 세밀히 말하면 타인과 잘 지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려져 있는 당신의 편안함과 따스함이, 별 생각 없이 햄버거를 주문하는 과정처럼 자연스레 소중한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잘 되지 않는 타인과의 사이를 억지로 돌리려는 여력이 있다면 사랑하는 이를 더욱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데 쏟는 것이 낫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정성은 그 소중함을 알아줄 이들에게 쓰일 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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