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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Mar 27. 2022

스스로에게 친절하지 못한 당신에게

늘 자책하는 내가 버거울 때 읽는 글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1.  지금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사랑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도 좋다. 만약 그 사람이 오래된 마음의 상처로 아파 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어떤 말을 건네주고 싶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떠한 목소리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까.

  #2. 만약 그 사람에게 다른 이가 "네가 힘든 건 의지가 약해서 그래, 네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어서 그래." "빨리 정신을 차리고 더 노력하면 마음이 괜찮아 질거니 어서 힘을 내." "그렇게만 있지말고 긍정적으로 좀 생각을 해봐, 운동이라도 해봐." 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까. 그 말에 깊이 공감이 되면서 편안한 마음이 들까,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그 사람이 더욱 힘들어지진 않을 지 걱정이 될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반감이 들진 않을까.

  #3. 당신은 세상 어떤 타인보다, 어떠한 존재보다 소중한 것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시는 지.

  #4.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타인에게도 건네지 않을 자책과 다그침을 나 자신에게 무심코 반복하고 있진 않은지.





  입원 병동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같이 입원한 환자들이 건넨 위로가 너무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주치의와의 면담 보다도 다른 환자들의 진심어린 이해가 힘이 되었다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힘의 근원이 어디일까 궁금하여 여러모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다.

  당연히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같은 마음처럼 깊이 공감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 큰 힘이 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환자들간의 대화에서는 결코 타인의 아픔이나 버거움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같은 아픔이 있는 이들의 대화는 그것이 힘들만 한 일인지, 그 사람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더 나아지려 노력해야 하는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아픔이 얼마나 그럴만한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함께 나눈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화에는 목적이 없다. 어떻게든 좋아지려 하거나,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을 인위적으로 이끄려는 마음이 없다. 단지 공감하고 또 이해할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묘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늘 깊고 진솔한 이해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어째서 좋은지, 사람들을 만나는 시도를 하는 것이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지, 집에서만 머무르기 보다는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왜 더 나은지. 우리는 생각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내게 좋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그 방법들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수록 우리를 다그쳐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 나의 문제를 분석하고,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반추하고, 끊임없이 나를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모는 것이 옳고 또 필요한 일이라 굳게 믿는다. 심지어는 그간의 내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 내 삶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존재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마치 '나는 힘들 만 해서 힘들었어.'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버리면 영원히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처럼, 안주해 버릴 것처럼.

  살면서 들었던 가장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던 한마디를 떠올려 보자. 책에서 읽은 글귀 한 마디든,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이들의 말 한마디든 누구나 마음을 깊이 이해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던가. 아마도 그 메시지가 나의 아픔을 더 깊이 파고들거나, 내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거나 다그치는 방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럴 수 있었다, 그럴만한 아픔이었다며 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고 어루만져주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흔히 우리가 두려워하듯 현실에 안주하거나 아픔을 도피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입원 이후 동료 환자들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고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수많은 환자들처럼, 버겁고 두려운 현실로 한걸음 나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의 삶과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가족, 친구, 연인, 정신과 주치의를 비롯한 세상 어느 누구도 나보다 나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향하는 비난은 세상 어느 누구의 평가보다도 뼈아프고, 스스로를 따뜻히 안아주는 이해는 어느 타인의 위로보다도 깊이 다가온다.

  단지 나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한다고 하여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인생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식의 무의미하고 공허한 메시지를 더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그저 괜찮다는 주문만을 반복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때로 삶이 마음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의도치 않고 원하지 않는 아픔이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와 내 삶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삶의 본질임을 이해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나를 감싸주고 안아주자는 것이며, 그 위로를 힘으로 원하는 삶을 이어가자는 것이다.

  한번쯤은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을 한 발 물러나 살펴보면 좋겠다. 당신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평가하고 다그치고 있는가, 혹은 스스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는 중인가. 두 관점에 옳고 그름은 없다. 하나가 맞고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어떻게 나를 대하는 것이 옳은지, 무엇이 나를 돌아보는 맞는 방법인지, 그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없다. 단지 어떤 관점이 당신을 살게 하며, 당신의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가. 나는 여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왠지 자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서, 그래야만 삶이 나아질 것 같아서,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다면 그러지는 않아도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위한 것들을 잘 알고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억지 노력과 다그침 보다는, 묵묵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위로와 힘이다.

  그러니, 조금 더 내게 친절해도 된다. 당신이, 당신이 너무도 아끼고 소중해 마지않는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건네고 싶은 그 따뜻한 말, 그 말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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