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Oct 23. 2022

당신이 잘 못 살아왔음을 설득해 보세요.

늘 스스로가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잘 살아가고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반대로 '나는 문제 투성이고 내 인생은 부족한 것들로 가득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직업병이겠지만 나는 후자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을 더 자주 만난다. 원하는 대로만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면서, 나와 내 삶이 '이만하면 괜찮다.' 란 인식을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을 찾을 정도로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더더욱 스스로가 문제라는 생각이 찾아오기 쉽다. 인생을 고되게 하는 것들, 이를테면 과거의 아픔, 경제적인 어려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성격적인 결함 같은 것들을 고치고자 생각을 시작하지만, 생각에 잠길수록 막막함이 더해질 뿐이다. 그 막막함에서 벗어나고자 다시금 고민을 하고, 그럴수록 더욱 힘겨운 마음이 더해지는 악순환. 그 고리 속에서 '나란 인간은 문제 투성이구나', '내 인생은 구제 불능이구나' 라는 결론을 어찌할 수 없어 진료실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럴 때 나는 다음과 화두를 던지곤 한다. '그럼 반대로, xx 씨가 어떻게 잘 못 살아오셨는 지 저를 설득해 보세요.'


기다렸다는 듯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진다. 취업의 실패, 가족 간의 갈등, 자식 문제 같은 익숙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도 하고, 친족의 성적인 침해, 각종 학대와 유기, 생명의 위협 같은 온갖 뉴스나 영화, 문학작품에서 표현될 법한 (혹은 실제로 기사화 된) 인간사의 비극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누구라도 불행하다 할 만한, 만약 직접 경험한다면 견디기조차 힘들 수 있는 그 일들의 중압감들이 밀려온다. 이를 이겨내며 조심스레 다시 묻는다.


'그래요. 인생은 때로 참 가혹합니다. 그러한 과정들이 얼마나 힘드셨는지는 굳이 설명하실 필요도 없을 거에요. 그런데 제가 드린 질문의 방향은 조금 달라요. 저는 궁금해요. xx씨의 인생이 얼마나 xx 씨에게 가혹했는지가 아니라, xx 씨가 얼마나 잘 못 살아오셨는지를 이야기해주세요.'


어떤 의도인지 뻔히 보이는 한 번만 비튼 질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내가 너무나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는 드물다. 당연히 그렇다. 원하는 것은 어렵고 원치 않는 것은 쉽게 다가오는 고된 삶이지만, 그 속에서도 늘 나름의 최선을 찾으려 노력하는 가련한 존재가 우리다. 돌이켜 후회되는 선택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어떠한 선택들도 그 때에는 최선이었다. 의도되지 않은 일들로 힘들어할 수는 있지만, 의도된 불행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없다. '저는 참 힘들었어요.' 라는 이야기에는 십분 공감이 되지만. '저는 잘 못 살아왔어요.' 라는 이야기에는 동의하기 힘든 이유다.





삶은 오류의 연속이다. 당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일이 100% 의도하는 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0%이다. 그것은 얼마나 당신이 매 순간 진심이며 열심이 살아가는지 와는 관계 없다. 우리의 인생에 관여하는 변수는 무한대로 가까울 정도로 많고, 그것들을 우리의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요행히 모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고통은 결함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진심과 최선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는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소망하고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거나, 사랑과 믿음이 배신당하는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시험에도 떨어질 수 있고, 사랑을 가득 담아 길러 온 자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한 노력과 진심만 있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은 아쉬운 환상이다.


그렇기에 삶에는 늘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의 인생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나 스스로가 어떻게 문제일 수 있는 지 논리를 만드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논리와 설명의 취지는 이해하나,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그런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이 잘못 살아왔다거나 앞으로의 삶이 불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증거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불행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없다. 때때로 원치 않는 순간들이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늘 나름의 최선으로 삶을 이어간다. 생 이라는 기차가 선로를 달리는 동안 어느 구간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구간에서는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억새 가득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당신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좋은 길로 달리고 있는지 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달려왔다는 사실 그 자체다.


종종 잘못된 길에 들고, 또 때론 수리를 받기 위해 멈출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당신은 꾸준히 달려왔고 또 달려가려 하는 중이다. 마음처럼 나아가지지 않을 때 조차 당신은 적어도 그 나아가지지 않음을 염려하고 슬퍼하였다. 생의 모든 순간 순간은 그 때를 살던 당신의 최선이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이 힘들때 마다 과거 탓, 남 탓, 세상 탓 푸념만으로 넘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모든 것이 내게 달리지는 않았으므로, 삶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당신의 잘못만으로 해석하지는 않지를 바라본다. 세상은 늘 나를 평가하고 또 절하하지만 우리는 늘 우리만의 '나름대로' 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삶의 험난한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이해해 보기를, 그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당신은 태어나서, 단 한순간이라도 불행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을까. 비록 잘 되지 않아 문제긴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을 갈망하고 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얼마나, 매 순간마다 스스로의 삶과 행복에 대해 진심이었는지를 나와 당신은 잘 알고 있다.





https://blog.naver.com/dhmd0913/222684112549

https://blog.naver.com/dhmd0913/222037782063

https://blog.naver.com/dhmd0913/222007967305



https://4yourmind.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의 생각은 다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