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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an 12. 2023

중요한 돈, 만큼이나 소중한 것들

진료실을 데우는 마음의 순환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을 한다. 나 역시 가족과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진료를 하고 돈을 받는다. 누구도 생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돈에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거나 애써 스스로의 욕망을 억누르는 중일 것이라 간주하는 나의 시각은 지나치게 편협한 것일까. 어린 시절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에 세들어 살며 집주인의 갑질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나는 위선으로 돈을 대하는 태도에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돈을 받고 진료를 한다, 만으로 환자와의 관계를 모두 표현하는 것은 너무도 빈약하고 부족하다.

자본주의의 아들로 태어나 신봉자로 모든 생을 보내는 우리는 가치를 경제적인 척도로 치환하는데 익숙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마음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라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오랫동안 같은 집에 들리면 안면이 익는다. 5번 정도 다녀가면 '정말 맛있다' 라는 표현을 하기에 쑥스러움이 덜해진다. 10번을 안면을 트면 주인 아저씨가 어떤 재료를 어떻게 쓰는지, 주말에는 서울 어디 라멘집에 수행을 다녀왔는 지를 들을 수 있다. 그 가게에서 지불하는 9000원과 모르는 길가 버거킹에서 지불하는 와퍼세트 가격 9000원은 같을 수 없다.

인연이 차근차근 깊어지는 마음은 서비스와 대가가 오고가는 것 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같은 카페, 같은 가격, 같은 메뉴의 커피라도 처음 보는 알바생이 내려준 것과 오래도록 커피 이야기를 나눈 '그'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신 맛이 같을 수는 없다. 먹고 사는 문제에는 비할 바가 못되는 사소한 가치들이지만, 그 소중함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친절에 마음이 열리는가 보다. '돈을 냈으니 무슨 이야기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볼까, 빨리 약이나 줘' 라는 뉘앙스로 나를 대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타과 보다 오래, 그리고 가족에게도 못할 이야기를 깊게 나누는 정신과 진료의 특성 상 오래도록 마주한 이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극히 일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고, 코로나와 A형 독감을 걱정한다. 서로가,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늘 느끼고 되새긴다. 약, 정교한 면담 기법보다도 진정으로 마음을 위로하는 건 그 '닿아있음' 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라 늘 생각한다.






항상 환자들에게 주장(?) 하는 것이지만 정신과 의사는 진료 과정에서 철저히 약자다. 늘 같은 방에 앉아서 나를 찾는 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약을 처방한 들 안먹어 버리면 그만,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전해도 무시해 버리면 그 뿐이다.

그렇기에 부족한 메시지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주는 환자들이 고맙다. 내가 '당신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치료관계상 부적절하거나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혹은 다른 의도로 인해 전하는 선물들은 용기를 내어 거절하지만, 고된 마음이 평온해지며 찾아오는 따뜻함이 담긴 이런 선물은 늘 반갑다. 그들은 내게서 치유를 얻었을 지 모르나, 나 역시 매일같이 집, 좁은 진료실, 방과 방을 일주일, 일년을 꼬박 왔다갔다 하는 고독감을 치유 받는다.

그 치유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나름대로의 길을 떠올리며 공부든 진료든 매진하는 마음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다는 믿음. 이는 다시, 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더욱 성심을 쏟는 힘이 된다. 작은 의원 진료실에서 당사자들은 모르게 오고가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힘의 순환이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을 그 순환으로 초대하고 싶다. 그 인연을 빌어 당신에게도, 예기치 않게 가장 좋아하는 동물과 음악이 담긴 오르골을 만났을 때의 따뜻함이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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