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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an 02. 2023

새해에도 당신의 장면이 가득하기를

CG 와 스토리에 대한 단상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누군가가 인생영화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늘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 을 꼽는다. 조국의 사정으로 JFK 공항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한 중년 남성이 공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좀 더 제작비가 많이 든 화려한 장면의 영화, 메시지가 멋진 영화, 영향력이 컸던 영화도 많지만 왠지 인생 영화 하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스포가 될 수 있어 이야기를 하지 못하지만 그가 뉴욕으로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이유, 공항에서 사람들과 뒤엉키는 에피소드, 그와 기가막히게 어우러지는 빛과 음악이 가득한 장면들이 마음에 깊이 남아서다. 말 그대로 그냥 좋았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한다면 직업, 명예, 부 같은 것은 촬영 장비, cg 기술 같은 것에, 행복은 시나리오, 혹은 영화를 볼 때 전해지는 막연한 감동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지위나 돈, 인맥 같은 것들이 충분하다면 삶의 애로사항을 풀어가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되고, 특급 호텔의 오마카세나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 처럼 반드시 그런 것들이 갖추어져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영화라도 시나리오가 설득력이 없다면 매력적이지 않다. 단순히 값비싼 장면이 나열되는 것 만으로는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반대로 거대한 자본력이 없이도 이야기에 깊이가 있다면 진정성있는 울림을 준다.



아바타 2의 기술력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 아무래도 아바타 1, 더 거슬러 올라가 타이타닉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센세이션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속편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전작들의 그 매력이 단순히 cg가 대단하고 볼거리가 풍성해서 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을 볼때의 흡인력은 '배가 정말 거대하고 대단한데 이런 장면을 어떻게 찍었지?' 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흔한 클리쎄지만. 그 흡인력은 상류층의 위선에 대한 염증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과 사랑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심정에 대한 몰입이었다. 결국은 이야기이고, 기술은 이를 위화감 없이 전하는 도구였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어떤 장면으로 꾸미고 싶은 걸까. 삶을 한편의 영화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몰두하지만 정작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 것인지, 어떤 장면을 담고 싶은 지를 몰라 늘 공허하고 허무한 것이 아닐까.







땅만 보며 아무 생각없이 지나칠 수 있는 출근 길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를 틀면 완전히 다른 장면이 된다. 스텔라장의 음색이 하루를 바꿔놓을 힘을 가지는 이유는, 고된 육아에 지친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가진 이후 처음으로 함께 콘서트 데이트를 할 때 들었던 음색이기 때문이다. 눈만 감으면 그 때의 장면과 감동이 고스란히 마음에 피어오른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마다.



마찬가지 이유로 의식하지 않으면 길거리 사람들의 부담스런 얼굴을 피하고자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지만, 의식적으로 15도 정도, 구름이 잘 보이는 각도로 고개를 맞춘다. 오늘의 하늘이 궁금하고, 바람이 어제보다 차졌는지 따뜻해졌는지를 느끼고 싶어서다.



아무 생각없이 집어먹는 구운 김도, 이왕이면 여러 김을 사 먹어 보며 유독 취향에 맞는 김 이름을 기억해두곤 한다. 만두나 게맛살도 마찬가지다. 라면을 끓일 때도 이왕이면 마지막에 고춧가루를 한 스푼 추가도 해 보고, 청양 고추도 썰어 넣어보고, 쿠x에서 주문한 모둠 해물 조각들을 한 줌 해동해서 넣어 보기도 한다.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 지나갈 일상의 순간들이 나만의 특별함으로 채색되는 순간들이다.



이러한 귀한 것들은 당연히 '당신 특이적인 것', 당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 같은 보편적인 욕동들은 이러한 사적인 가치들로 치환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해 소중한 것이며, 우리가 그러한 본질 없이 그 자체의 추구에만 몰두할 때는 공허한 것이다. 마치 멋진 장면을 구현할 기술에 몰두하는 나머지 어떤 장면을 그리고 싶은 지를 잊어버리고 만 것 처럼. 어쩌면 당신의 삶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은 8mm 카메라, 휴대폰 동영상으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만이 알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소중함, 이 저렴하고도 효율적인 행복이 당신의 새해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https://youtu.be/XtYGk-kvWP0




23년 새해에도 마음을 데워주는 작은 것들이 늘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의 출근 길에는 꼭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시고,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를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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