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12. 2023

인생의 길을 잃은 항해자들에게

삶이 경로를 벗어날 때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어느 해든 그랬지만 22년 작년 한 해는 유독 예상을 벗어나는 어려움이 많았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급작스레 금리가 끝도 없이 올랐고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인생 계획을 수정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좌절과 두려움을 느끼는 중이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내 인생은 괜찮을 것인가. 늘 두려운 우리는 삶을 계획하고 통제한다. 투자 계획, 업무 계획, 결혼 계획, 자녀 교육 계획을 늘 세우고 그대로 하려 노력하지만, 계획이 정교하고 세밀할수록 현실이 이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삶이 두려울수록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만 그럴수록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은 늘어난다. 두려움이 커질 수록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생각들이 반복되고,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는 늘 판단을 한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지 틀린지, 지금의 선택이 내게 최선인지. 그러나 그 판단에 대한 답은 바로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산 주식은 내일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오르면 오늘의 내 선택은 잘한 것이고, 내리면 아닌 것이다. 고심해서 택한 전공이지만 너무도 나와 잘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처음에는 너무 잘 택했다 좋아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니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잘못 들어 왔다 생각한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다 보니 인생 직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내리는 판단들이란 늘 지금 이 순간만의 정답일 뿐이다.


나는 지금 나에게 최선인 오늘을 보내고 있는가? 모른다. 지금 내가 내리는 선택들은 나에게 기대하는 결과들을 가져다줄 것인가? 알 수 없다. 나는 잘하고 있는가? 그 누구도 확인해 줄 수 없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존재는 1주일 이후의 나, 1년, 10년 뒤의 나, 그리고 죽음을 앞둔 나, 미래의 나 뿐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분석해도 지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지나친 자신감과 확언은 되려 큰 실망과 좌절로 돌아오기도 한다.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완벽히 실현하는 과정이 삶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일도 사람도 인생도 마음대로만 될 수 없다는 당연한 현실 앞에서 그러한 원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삶을 이어나가지 않았던 나는 불안하고 혼란해졌다. 그러한 혼란을 잠재우고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지를 마음속으로 판단하기 위해 생각에 몰두하곤 했다. 그럴수록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 살아가는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를 지금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외려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지금의 내가 옳은지, 지금의 나는 어떠한 생각과 방법으로도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나 자신이 원하거나,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매진하면 되는 것이다. 잘 되든 못 되든 그것은 질책의 영역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삶의 한계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한 이후로 나는 지금의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잣대를 마음이 내게 들이밀 때마다 이렇게 다짐을 하곤 한다. ‘완벽하게 살아가는 법’ 이란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답을 하느라 지치지 않겠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지를 고민하는 것은 내려두겠다고.


대신 무엇이 나의 삶, 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지를 고민할 것이며 어떻게 보내는 하루가 오늘의 최선인지를 떠올릴 것이다. 때로는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하루를, 때로는 평생토록 기억할 만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지금 이 순간을 위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구태여 확신을 찾지 않으며 단지 그런 하루를 오늘도, 내일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확실함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삶이란 온전히 나의 통제 아래 둘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또 받아들이면, 역설적으로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원치 않은 결과, 어쩔 수 없는 불행이 일어나는 이유가 미리 제대로 삶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본디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임을 인식하면 내일이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변수가 있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행복에 다가가는 길은 변수를 하나하나 지워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는 본디 변수가 있음을 깨닫고 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데 있다. 잘못 든 옆길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추억을 발견하듯, 때로 알 수 없는 길을 걸어도 묵묵히 걷다 보면, 미리 생각하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삶이다.


만약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아픔이 다가올까 지나치게 불안하다면, 원래 사는 게 그런 것이라 담담히 되뇌어 보기를 바란다. 내일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까 미리 고민하는 대신, 그 두려움을 정말로 대처가 필요한 일들을 위해 아껴 두길 권한다. 원하는 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이루어 질 때만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할 때 마다 좌절하는 대신, 꿈꾸고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그저 오늘 하루만큼만 할 수 있는 걸음을 내딛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내일도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기대하던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 또는 불행이 올 것 이다. 그리고 마치 파도가 들고 나듯, 그 다음 삶이 또 다시 찾아올 것이다.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불확실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삶이 이어지는 원리이다.


오늘이 미래에 어떤 하루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보내야 하는 하루, 혹은 보내고 싶은 하루를 쌓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보내는 시간은 흘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당신의 올 한해도 한 해 만큼만 쌓였을 것이다. 당신이 아는 형태로, 혹은 아직은 알 수 없는 형태로. 그리고 다가오는 한 해 역시, 알 수 없는 소중함이 쌓여가는 시간이기를 기원한다.






[본 원고는 미래에셋 '세이지클럽' 2023년 겨울호에 개제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dhmd0913/222990851740

https://blog.naver.com/dhmd0913/222953922429

https://blog.naver.com/dhmd0913/222929008059



https://4yourmind.modoo.a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