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보상행동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조현병 치료제 중 아리피프라졸 이라는 약이 있다. 이전 치료약들은 뇌에서 도파민의 활성을 일방적으로 막는 작용을 하는 데 반해 이 약은 도파민의 활성이 부족한 수용체에서는 활성을 올려주고, 과다한 곳에서는 활성을 감소시켜주는 기전으로 약효를 낸다. 이 특수한 기전으로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효과가 좋아 한때 미국 기준으로 무려 모든 약 중 처방 1위 (정신과 약 중이 아니다!)를 달성한 약이다.
후속 연구를 통해 이 약이 조현병 뿐만 아니라 조울증, 우울증, 틱, 강박 등 다른 질환에서도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이 밝혀져 타 질환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주로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물질의 조절로 효능을 내는 기존의 우울증 약들에 비해 도파민을 조절하는 작용이 일상의 활력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기전에 따라, 단순 항우울제를 처방하여도 반응이 제한적인 환자에게 해당 약을 종종 부가요법으로 처방하곤 한다.
우리 병원에서는 처방하는 약의 성분명 이외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안내문을 함께 제공한다. 그런데 이 안내문이 종종 역효과를 낼 때가 있다. 아리피프라졸에 대해 조현병 치료 라는, 편견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많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걱정하는 것이다.
조현병약, 항우울제제, 불안증약, 수면제 등의 용어는 그 자체로 미스노머 (misnomer), 부적절한 용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같은 기전의 약이라도 다양한 질환군의 다양한 상태를 치유하는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각 약은 각기 특이적으로 뇌와 신체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GABA,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효능이 있다. 불안증을 조절하는 항불안제가 이로 인한 불면을 함께 치유해 주기도 하고, 우울증에 주로 효용을 보이는 약이 불안장애에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으며, 조현병에 특효인 약이 조울증이나 우울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진단적인 범주와 그에 따른 입증된 효능이 중요하지만, 실제 처방은 불면증에 수면제, 우울증에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식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우울증이라도 무기력이 심하게 와서 손가락을 까딱할 수 없는 경우와, 불안 초조감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경우의 약이 같을 수는 없다. 처방은 단순히 우울하다, 불안하다, 잠이 안온다 라는 단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환자 상태에 대한 세밀한 평가를 바탕으로 적재 적소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호자들이 단순히 용어에 대한 인식으로 '우울증으로 치료 받으러 간 아이가 왜 조현병 약을 받아오느냐' '이런 약은 먹지 말라' 고 한다. 이러한 보호자의 불안으로 환자에게 효능이 좋았던 약을 중단하거나, 심지어는 진료 자체가 중단되는 불상사도 종종 발생한다.
물론 조현병 치료 자체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기를 궁극적으로 바라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 나아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전체에 대한 일정 수준의 편견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단지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 우리 아이가 느닷없이 조현병의 치료에도 쓰는 약을 받아오는 것이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호자의 불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불안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의심과 검토는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거나 현재의 문제를 수정하는 고유한 순기능이 있다. 이러한 걱정을 기반으로 아이의 치료에 대한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고, 주치의에게 문의하거나 환자 본인과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소통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불안이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환자의 힘든 마음을 보호자와도 더욱 깊게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종종 환자는 많은 효과를 보고 만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 자신의 불안으로 인해' 약을 불신하거나 치료를 중단시키는 경우를 흔히 본다. 보호자 뿐 아니라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을 해 보아도, 논리는 언뜻 그럴듯하 실은 근거가 없이 지엽적인 경험과 불안에 기인한 정보글들, 경험담들이 넘쳐난다. '정신과 문제는 다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마음만 잘 먹으면 해결된다.' 라든지, '정신과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끊을 수 없다.' '정신과 약 먹으면 부작용이 심하고 치매가 생긴다.' 와 같은 오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경과가 많이 호전된 한 환자가 '그런데 내가 볼때는 괜찮아 보이는데 왜 계속 약을 먹느냐' '약보다 강연이나 책을 읽는 것이 더 좋다는 유튜브를 보았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부모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갔다. 이러한 장면을 보며 되새기는 삶의 원리가 있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피해야만 한다는 본능에 '압도되어 버리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어머니의 뺨을 때린 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무슨 패륜이냐 할 수도 있지만 사연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춘기 이후로 쭉 과도한 통금을 강요하고 교제하던 남성이 있으면 찾아가 만남을 중단하도록 종용하는 등 강박적으로 딸의 이성 교제를 금지해왔다. 그러다 딸의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 오자 이제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 물었다는 것이다. 댓글 역시 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너무 이해는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머니의 불안이 지배했다. 이성관계 그리고 혼기에 대한 불안 이외에 딸이 누구를 어떤 마음으로 만나는 지, 어떤 사랑을 가꾸어 나가고 싶은 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예는 자식의 앞날이 걱정된 나머지 아이가 지쳐 쓰러지려 해도 10개씩 학원과 과외를 보내는 부모, 시험 탈락의 좌절이 두려워 아예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는 수험생,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재산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의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마음의 일부로 존재하는 불안이 선을 넘어 삶 전체를 잠식하고 압도해 버리는 예들이다. 가족이 잘못될까봐, 인생의 위기가 닥칠까 봐 미리 염려하고 대비하려는 의도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불안이 '실제로' 나와 나의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지, 반대로 다른 무엇보다도 '불안을 없애는 것' 만이 중요해진 나머지 나의 오늘과 내일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하는지 이다.
당신의 불안이 당신을 위해 쓰이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관점이 있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행하는 일, 오늘 보내는 일상과 하루가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라는 이유에 더 어울리는 지, 혹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하루에 알맞아서' 라는 이유에 어울리는 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하여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며 소진되게 할 것이다. 반대로 후자라면 불안은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또 이를 위해 좀 더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을 죄어 오는 그 불편한 '느낌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이어지는 삶의 방향, 실제로 발생하는 '행동'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불안을 느끼는가? 두려움이 우리를 조여 오지만 의식적이고 인위적으로라도, 그 불안이 당신을 독재하도록 두지 말자.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불안이라는 현상이 단지 당신의 삶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여보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불안으로 인한 불편감은 피할 수 없는 세금과도 같다. 이왕 지불해야 할 세금이라면 당신의 삶을 위한 환급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불안이라면, 밉고 싫지만 삶을 나아지게 하는 도구, 쓴소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도 오직 불안을 보상하기 위한 도피행동이 아닌,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채워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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