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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ul 31. 2019

신혼 단상; 결혼을 할까요?

드립 커피 두 잔 내리기

#1.     


미혼 친구들과 후배들이 종종 결혼 생활에 대해 묻는다. 오래된 연인과 결혼을 할 지 말지를 묻기도 한다. 나 역시 얼마 전 까지는 같은 고민의 당사자였기에 즐겁고 흥미롭게 의논하는 편이다.     


돌이켜 보면,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고민이 ‘이 사람과 행복할 수 있을까?’ 는 아니었다. 여러 형태의 행복의 가능성들 중 ‘이 행복을 택할 이유는 무엇인가?’ 가 고민이었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 중 이 사람과 함께 할 이유가 무엇일까 (아내가 보면 안되는데 ...) 라는 질문뿐만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수많은 삶의 형태들 중에서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단 한 가지의 삶을 택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결국엔, 무엇이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내려놓을 것인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 에 대한 고민이었다.


최근 감명 깊게 읽었던 문구가 있다. ‘… 그들은 종종 자유에 집착하여, 자유에 구속됩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는 상태’ 에 집착하여 어떤 선택이든 하지 않고 도로 물러섰던 적이 많았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포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얼핏 손해 같기도 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음’에 ‘구속되지 않으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삶도, 분명 있다.      


인생의 다른 여러 가능성들을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꼭 함께하고픈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은 분명 해볼 만한 일이야,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2.     


결혼 후의 변화는, 맞을 만한 비가 셔츠를 천천히 스미다 어느새 흠뻑 적시듯 온다.


사소한 약속도 내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 거추장스러운 제한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만큼 아내의 행복이 내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의례 변화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적응이 필요했는데 평온히 달라질 수도, 달라지며 평온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결혼 후에 알았다. ‘이 사람과 같이 살까?’ 라는 고민이 참 어려웠는데, ‘이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까?’ 라는 고민은 그보다는 쉽기 때문일 것이다.



#3.     


드립 커피를 내릴 때 가장 연습이 필요한 부분은 물줄기의 조절이다. 여덟 바퀴 가량 내리는 물줄기가 꾸준히 일정하도록 하여, 내렸을 때의 커피 양이 알맞도록 조절하는 것은 제법 까다롭다.


한 잔의 커피주로 내리다 두 잔의 커피를 한 번에 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 내리는 속도나 물의 양을 조절하면 끝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감각을 익혀야 한다.  


주말 부부, 홀로 지내는 주중, 아내가 없어도 두 잔을 내려 텀블러에 두고 두 번을 마신다. 그렇게 세 번을 내리면 한 번 그녀가 마시러 온다. 평일엔 한 잔 내려 마셔도 되지만, 어쩐지 그냥 두 잔 내리게 된다.


주말이면 결혼 전에는 걷기를 즐기지 않았던 아내도 함께 산책을 한다.     


결혼 생활이란 그런 것 같다. 그렇게 같은 곳을 보고 살아가다 보니, 조금씩 달라져 같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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