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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Sep 01. 2019

당신을 읽고 쓰는 글

쓰고 읽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

#1.

  마음은 파도가 그치지 않는 바다 같다. 모래사장에 끄적인 옛사랑의 이름이 지워지듯,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도, 쉬지 않고 들고 나는 살아갈 걱정들에 그 자취가 이내 희미해진다. 하염없이 쓸려 내려가 이제는 더 이상 떠오르지 조차 않는 마음들. 이에 대한 그리움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부풀 때, 쓰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2.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단순하다. 월수입, 부채, 이자, 찌개용 목살의 100g 당 가격은 0에서 9, 10개의 숫자로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내는 것을 넘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 더 복잡한 것들이 필요하다. 지금 네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연민인지, 혐오로 감춘 미련인지 는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나눈다. 그러나 내가 네게 건네는 고백은 언제나 부족하며, 네가 내게 전하는 안부는 언제나 목마르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우선하고,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규정한다는 철학적 견해에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 아직도 언어는 마음을 완벽히 드러내기엔 한참 모자라다.

  그 막막함 앞에서 우리는 글을 쓴다. 글도 언어지만, 글은 말보다 오래 참는다. 단 한사람을 위한 편지를 눌러쓰기도 하고, 누구든 읽으라며 심정을 휘갈기기도 한다. 글에는 조금 더 나를 살피고 가여워하는 마음, 조금 더 애틋하게 또 편안하게 표현하려는 정성, 조금 더 읽는 이와 닿고 싶다는 그리움이 스며있다.

  찍어낸 선물 포장의 정갈함 보다는 길이가 달리 묶인 리본의 정성이 와 닿는다. 표현을 유려하게 다듬은 글 보다는 마음을 세심하게 더듬은 글이 아름답다.

  오늘도 글을 읽고, 한 꼭지의 글 만큼 그들을 읽었다. 오늘을 살아내고, 살아내기 를 넘어 살아있음을 느끼기를 원하고, 그 지긋지긋함에 지치고 또 감동하는 것이 나만이 아니었구나, 이를 깨닫는 위안이 참 포근하다.


  마음의 정경을 충분히 담기엔 색이 모자란 싸구려 물감 세트 같은 글 솜씨를 가지고서, 그 짧은 진심들이 준 감동을 그려 본다. 언제고 꼭 꺼내보고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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