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탄생 게임 4편

by 웨카의 북카페

드디어 인내의 끝에 자궁 안 내면 안착에 성공하였다. 조물주도 내게 거센 게시를 준 듯. 이곳은 생각보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온갖 별들이 빛나고 차디찬 불꽃이 피던 그 시절을 잊은 채, 난 홀연히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었다. 온갖 억압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기나긴 암흑 시절이 자그마치 수십 억년의 시간들이었다. 내 존재도 몰랐고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저 새로운 광채가 빛나는 그곳이 천상세계일 거란 직감에 의존할 뿐. 난 그렇게 생존의 갈림길에서 여럿을 제치고 탄생길에 오른 것이다.


나의 성체가 점점 더 성장해지고 있단 걸 느끼고 있다. 내 속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각종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처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지가 않다. 몇 주가 지나 나의 가슴 한편이 쿵쾅쿵쾅 뛴다는 걸 직감했다. 기진에 가던 육의 형체가 반듯하게 서기도 하고 뒹굴어 보기도 한다. 자율자재로 헤엄쳐왔던 그 느낌 그대로이다. 점점 더 하나의 생명체로 변해갔다. 생명의 시작, 유감스럽게도 다른 동물이 아닌 인간이었다. 난 아직 피부가 없다. 날 지탱하고 있는 양수에 의존하여 더욱이 빛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한다.


조물주의 계획에 의거하여 날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그의 머릿속은 전생의 기억을 내게 되새겨 주었다. 뜨문뜨문 빛도 기억이 나고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고 흐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나 정확하게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왠지 모르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떠돌아다닌 느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내가 선택한 관문에 의해서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난 수없이 긴 터널을 지나야 했고 그때마다 항상 내 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어디가 정답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나의 직감에 의존하여 한 곳을 택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 두 개의 문 앞에서 잠시 머뭇 거리다 내 옆을 먼저 지나 오른쪽 문을 들어간 성체가 있었다. 그 즉시 우측 문은 사라졌고 하나의 문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난 깨달았지. 이 문이 열려있을 때 택하지 않으면 난 또 수 억 년 이상을 이 공허한 세계에서 맴돌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분명 그 두 개의 문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었고, 내가 탄생하며 그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이유를 내각 죽는 그날까지 찾아 떠나야 하는 생존 게임이랄까?


어디선가 생에 처음으로 들어본 음성이 들렸다. "아직은 이릅니다. 위험합니다."

도대체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일까? 이 경험은 나도 처음인지라 익숙하지가 않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내 기억에선 없었다. 도무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금 이곳을 왠지 모르게 또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똑같이 난 또 살기 위해 내 육신을 이끌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럴수록 느껴지는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점막.

갑자기 사라졌다. 내 시야에서 완벽하게 없어진 공허하고도 나를 보호하는 막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서서히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아직도 나의 눈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암흑의 세계. 허공에서 기이한 영들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더 또렷이 음성이 들려온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조금만 더..." 나도 모르게 더욱이 바늘의 끝부분에 점을 찍 듯한 아주 미세한 구멍사이로 나가기 위해 힘쓴다. 점점 더 나의 위가 조여 오고 숨이 가빠오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몰려온다. 그런데 뒤로는 갈 수가 없다. 아니 길을 잃었다. 이전에도 그러하였듯이 자그만 틈 사이만의 빛나는 그곳을 향해 유유히 빠져나가고자 힘을 썼다. 점점 더 조여 오는 영의 손길에 치성을 드리우며 날아갈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난 마침내 난생처음으로 세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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