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살아 생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나는 왜 이곳에 태어난 것일까? 하필이면 지금 이 시대에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죽음은 언제 찾아오고 내가 선택할 수는 없는것일까? 나의 삶속에서 많은 우여곡절 생존게임을 펼쳐가면서 하나둘씩 이 삶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가족들과 지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탄생게임을 이어가고 있는것인지.
지금 내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BC3,000년대 경 아담과 하와의 셋째 아들인 셋의 후손으로 태어난 내가 왜 탄생한 것일까. 그 의미를 찾아 떠난지도 수백 년이 흘렀다. 조물주의 게시로 큰 방주를 만들고 인간인 나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엄청난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극치 못했다. 나와 같이 태어난 모두가 단 한번뿐인 탄생게임을 시작하고 있는데... 태어나기 전과 후의 기억따윈 존재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반복된 환생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엇하나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을 비롯한 수없이 태어나 탄생게임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곳에 없다.
죽음을 맞이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탄생과 함께 죽음이란 것을 만들어 주었다. 왜 그랬을까? 나의 윗세대부터 들려 전해져온 이야기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했다. 내가 듣고 알고 있는 것은 그곳에서 인류처음으로 악을 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들었다. 유량생활을 하며 나의 선조들은 그렇게 선과악을 행사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내게 게시가 떨어졌고, 나 또한 보이지 않은 조물주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딴 [노아의 방주]를 만들었고 많은 가축과 인류를 살렸다. 하나, 방주에 탑승하지 못한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크나큰 인류의 비극이었다. 우상숭배와 죄악. 타락을 일컫는 인류에게 조물주가 내린 심판이었다. 과연 이전 에덴동산과 같은 평안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인류는 언제부터 이렇게 악에 물든 것일까. 점점 탄생게임을 풀어가는 과정이 힘들어지고 불안해져만 갔다. 어쩜 악의 저주를 안고 살아가는 게임이 바로 탄생게임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대비할 수 없는 공포감. 인간이 느낄수 있는 최대의 스릴이자 고통이 아닐까. 조물주의 심판이 지나자 점차 밝은 하늘이 나를 감쌌다. 나는 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농사한 곳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포도를 수확해 술을 만들어 장막안에서 벌거벗어 유흥을 즐겼다.
함이 취한 나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형제들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내 위에 덮어주었다. 인간이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실수를 반복하는 연약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회개하고 더 큰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물주를 섬기고 또 의지했다. 나는 홍수 사건 이후 삼백 여년을 더 살 수 있었다. 죄악이 만연한 세상을 한탄하며, 물에 빠져 죽은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겪은 트라우마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 분명 구원이란 것이 있음을 믿으며 조물주를 섬겼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이번 생에 많은 것을 찾진 못한 것 같다. 나의 혼은 어디로 떠나갈지... 떨리는 두 눈을 감으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