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문의 의미를 찾아서

-탄생 게임 11편

by 웨카의 북카페

또다시 흐르는 공허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아... 이 느낌? 익숙한데...' 나의 혼은 이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알고 있었다. 차디찬 폭풍우가 불어오는 그 겨울에서도 내가 서 있는 이곳만이 따뜻한 느낌이랄까. 나를 두고 주변이 감싸인 보호막을 친 느낌이다. 그렇게 난 수백 년 이상을 또 이곳에서 떠돌면 살아갔다. 내 앞엔 왠지 낯설지 않은 두 개의 문이 보였다.


'아... 이 문... 분명 내가 몇 번이고 선택한 그 문이다.'


그동안 난 첫 번째 문은 늘 왼쪽만 선택했었다. 이번에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택해 볼 것이다. 물론, 이 문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틈사이로 보이는 빛을 쫓아 헤엄쳐 가야한다. 그 사이에 통과한 문만으로도 수 십 개는 될 것이다. 내가 있는 이 세계. 하루가 일초 같은 곳이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난 또 이렇게 나팔관 안에 난자가 들어오는 그 요지를 찾아야 한다.


태어나야 하고, 그때 비로소 탄생 게임을 할 자격이 부여된다. 그저 신기한 것은 내 육신은 달라졌지만 내 혼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탄생 이후로는 그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 게임이 끝나서야 난 영혼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번은 긴가민가 했지만 수 천 년을 반복해 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살아온 흔적들을 말이다. 기억해 낼 수 있다.


이번에 내가 풀고자 하는 궁금증은 각 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매번 첫 번째 문은 우측을 택했으니, 이번에 내가 좌측을 택한다면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나는 게임을 치르면서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신은 존재했고, '왜 나를 택해서 세상으로 보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지금은 몇 세기 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블랙홀과 같이 공허하고 깊이 있는 이곳은 정체 모를 신비의 세계. 인간이 우주로 가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생체감보다도 훨씬 더 극한 곳. 난 이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내가 인간으로 살아갈 시간이 되었단 걸 말이다.


수메르와 바벨론의 문명 중심지. 이곳이 갈대아 우르이다. 부유한 가정. 조물주는 나를 가난한 곳이 아닌 풍요로운 삶으로 이끄셨다. 내 이름은 아브라함. 하나님은 내게 말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나는 이 명령에 순종하고자 믿음으로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떠났다. "주여 내가 순종하겠나이다."


나는 조물주와의 약속을 믿고 많은 시련과 도전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아내 사라와 함께 아들을 낳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의 아내는 너무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사라는 내게 말했다. "우리의 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는 게 어떨까?" 나는 그래서는 안되었지만, 그토록 원한 아이를 갖기 위해 이스마엘을 출산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진정한 혈통을 통한 아들이라는 점에서, 결국 사라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물주는 아브라함과 사라 우리 부부에게 늦은 나이에 아들 이삭을 주었다. 말도 안 되는 늦은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주시다니 난 참으로 믿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믿음의 증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나를 더욱 매혹시켰다.


시간이 흘렀다. 가뭄과 기근이 너무 심해 우리 부부는 애굽으로 떠났다. 이 사회는 아름다운 여성을 아내로 삼으려는 경우, 그 여자의 남편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갖고 있었다. 나의 아내 사라가 매우 아름답다는 사실이 두려워 이곳에서는 "사라는 내 누이다."라고 사람들에게 속여 말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최고 권력자 바로왕은 내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려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하나님이 꿈을 통해 바로왕에게 사라가 나의 아내임을 알려 주셨고, 바로는 내 아내를 내게로 돌려보내주었다. 나의 나약함. 나는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나를 더욱 조물주께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 관계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약한 나의 모습에 한탄스러운 나날이었다.


문득 드는 생각. 이전과는 다른 환경. 부유함인가? 아니면 나약한 나의 두려움인가? 약속된 자손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리는 대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으려는 조급했던 나의 행동은 조물주에 대해 믿지 못했던 것일까? 사라를 누이라 속여 보호하려는 행동은 조물주를 신뢰하지 못해서였던 것일까? 인간적인 두려움이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에 아련한 마음마저 들었다. 첫 번째 관문. 어쩌면 풍요와 가난? 아니면 장애와 비장애?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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