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원하는 템포로 운동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일은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휴가를 사용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한강을 뛰었다. 천천히 원하는 템포로. 생각보다 월요일 아침 한강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다들 나이대가 있으신 어르신 들이었는데 문득 아 이분들이 내가 그렇게 원하는 은퇴의 삶을 이루어낸 분들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응당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퇴를 이루어 내고, 이 시간 잠실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라면, 사전적 정의의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만 하니까. 놀랍게도, 자세히 살펴본 그들의 얼굴은 내 기대와는 달랐다. 뭔가 무료해보인다고 할까? 어제와 전혀 다를바 없는 오늘을 맞이한 사람의 표정. 하긴 일요일과 월요일에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은퇴의 삶일 것이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 겠지만 말이다.
나는 무엇을 기대 했을까? 더 이상 밥벌이 하지 않는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행복의 이미지를 기대했을까? 오히려 오늘 한강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마 내가 아니었을까? 늘 그래 왔던 것 처럼 지옥같은 사무실에서 한주를 시작했어야 마땅한 사람이 한강을 달리며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가설을 검증하다니, 이 보다 즐거운 상황에 놓인 행복한 사람이 누가 또 있을까? 어제와 오늘을 구분짓지 못하는 사람이, 무료함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일진데, 나는 또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꽤 오랜 기간 책을 읽고, 생각하고, 찾아 헤메고, 토론한 결과, 행복은 매우 상대적이면서 찰나의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말히기에 큰 어려움이 있는 개념이라고 믿어진다(나에게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처럼(이 글이 흥미롭다면 꼭 보시길 추천한다) 아마 오늘 내가 한강에서 느낀 그 것도, 비슷한 개념이라 할수 있겠다.
난 오늘 행복했다. 달리면서. 내일은 불행할 것이다. 회사에 가야 하니. 그런데 슬퍼하지 말자. 그것이 인생이고, 지옥으로 돌아가는 자에게 허락된 행복이 있는 것이고, 지옥으로 돌아기지 못하는 자에게 씌워지는 무료라는 저주가 있는 것이니.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행복하려 하지 말고, 행복을 느끼기나 해라. 그것 조차도 우리에게 매우 도전적인 과제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