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사당 인근에 가면 '훈감동'이라는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텐동집이 있었다.
텐동. 일본식 튀김을 밥 위에 올리고 간장 소스를 더한 덮밥이다. 전심메뉴로 제격.
가게 이름은 '훈감동'이다. 형제가 운영하는 텐동집. 형은 마케팅을 비롯해 브랜딩까지 외형을 맡고 있고, 동생은 훈감동 메인 셰프로 주방의 기둥을 맡고 있다. 처음 '훈감동'은 아주 작고, 도쿄 골목에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오너들은 항상 이 곳까지 찾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어느날 오너들 중 형에게 연락이 왔다.
훈감동 이전 장소 결정!
공간이 한 3배 커질까? '훈감동' 두번째 이야기는 제법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시작됐다.
첫 디자인 미팅은 편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이렇게 빠른 전개가 이루어지는 미팅은 기분도 좋다. 서로 역할을 존중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미팅. 각자 역할에 충실해서 대화를 끌어가다보면 순식간에 미팅이 끝난다.
딱! 한가지 오너가 강조했던 요구사항이 있다면, 힙한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것.
힙한 공간이란 뭘까?
사전식으로 풀이하면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한 공간을 말한다.
가장...어렵다? ㅎㅎ 사실 이런 요구사항을 말하는 클라이언트가 가장 어려운 클라이언트다.
조각 조각을 끌어모아 힙한 느낌의 공간을 창조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정답이 없기 때문에 길을 찾아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번 작업엔 운이 좋았다. 클라이언트와 바라보는 방향이 같았다고 할까? 원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작업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외식공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하는 업무는 메뉴를 정확히 확정하고, 그 메뉴를 해결하기 위한 주방설비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공간의 컨셉을 따지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 주방을 심장이라 생각한다. 인테리어에서 시각적인 것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해서 매번 강조한다. 홀이야 차후에 얼마든지 갈아 엎을 수 있다. 하지만, 주방은 한번 자리 잡으면 쉽게 수정하기도 힘들 뿐더러 주방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느냐에 따라 매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100%. 창업 베테랑이라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훈감동 오너 형제에게 주방 설비 리스트를 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함께 일하는 주방팀을 붙여 주방 규모를 산정하고, 주방 설계를 진행했다. 주방 위치 선정은 주로 내 주도하에 클라이언트와 함께 결정하는 편이다. 물론 주방팀도 관여를 해서 함께 결정할 수도 있지만, 주방 위치는 조금더 높은 시선으로 광범위하게 공간을 바라보며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 나와 클라이언트가 주로 결정을 해서 주방팀에 공간내 주방위치를 표기해서 넘긴다.
그럼 주방팀은 설비 리스트를 파악해 그 위치에 얹어 주방 설계를 마무리 하고, 마무리 된 도면을 넘겨받은 나는 홀까지 함께 디자인을 이어나간다.
주방 설계안이 잡히면 그 다음 중요한 작업은... 바로 좌석배치다.
카페를 디자인할 때와 외식공간을 디자인할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좌석 배치다. 외식공간은 좌석 배치에 따라서 매출에 영향이 크다. 아무래도 외식 메뉴는 기본적으로 좌석에서 먹고 가야하기 때문에...
반면 카페는 좀 다르다. 테이크아웃이 매출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얼마나 사들고 나가게 하느냐...를 만들어 내는게 카페 매출의 비밀이다.
좌석배치는 최소한의 최대한의 상태를 다양하게 비교하면서 잡아 나간다.
딱! 마음에 드는 배치구도가 나올 때가 있다. 충분히 좌석수도 확보되면서 뭔가 정리가 된 듯한 느낌. 자연스럽게 이거다! 는 느낌일 올 때까지 변화를 주면서 도면을 그려야 한다. '훈감동' 두번째 공간에서도 이상적인 좌석 배치를 찾아냈다.
'훈감동' 첫번째 공간은 도쿄 어느 골목에서 만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면, '훈감동' 두번째 공간은 배경을 좀 옮겼다. 뉴욕으로... 재밌는 상상이지만, 뉴욕으로 유학간 두 형제가 머물면서 한인타운에 오픈한 '훈감동'...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비상구 표시 같은 악세사리는 실제 미국에서 사용하는 EXIT를 설치했다.
뿐만아니라 매장의 컬러톤이나 빛깔 자체를 왠지 모르게 외국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로 연출했다.
이런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와 난 호흡이 잘 맞았다. 모든게 빠르게 결정됐고, 시공도 무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단, 시공 했던 때는 한참 추워지는 시기였다. 올해는 유독 또 심각하게 추웠던 걸로 기억난다.
사실 추우면 추울 수록 현장은 더디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동작도 느려지고, 습식공사를 할 땐 아무래도... 재료가 얼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더욱 느려진다. 무엇보다 하자 때문에 더 걱정을 하게 된다.
다행이도 훈감동은 현재까지 특별한 하자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지난 '훈감동'일 때 보다 훨씬 사람들의 사랑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보인다. 클라이언트도 내게 '힙감동'이라 표현할 정도로...
요즘엔 색을 좀 과감하게 사용해주는게 보기 좋다는 생각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컬러를 직설적으로 공간에 사용하면 살짝은 유치하다는 반응이 있을 수 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솔직한 컬러를 소비자들도 좋아한다.
'훈감동'은 그린이 포인트 컬러가 돼 주었다.
그린 중에서도 몬가... 진-한 그린. 여백이 없는 그린이랄까? 매트 그린... 꾸덕한 그린...
우드톤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깜-놀.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기존에 자기 매장을 운영하고 있던 오너가 확장 또는 이전을 위해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경우. 이번 훈감동 프로젝트와 같은 경우. 이런 경우는 내가 살짝- 한 부담을 내려 놓을 수 있어서 좀 더 프로젝트를 즐기는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 창업하는 오너의 프로젝트를 안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단, 훈감동 오너 처럼 유경험 오너의 경우 조금 더 내가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는 뜻이다.
오너들도 이미 매장을 한번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자기 포지션을 이해 하고 있다. 즉, 난 디자인만 집중하면 되는 역할로 그 외 매장은 운영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오너들이 집중하면 되는 역할로! 정확하게 구분된다.
조만간 훈감동에 가서 텐동하나 챙겨 먹어야겠다.
부디 더 성장해서 다음 세번째 공간도 내가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엔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두고 컨셉을 잡을까...?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감동의 맛, 훈감동이다.
(오픈 선물로 네오트 제빙기 55kg 선물했다.)
▶️ 일식요리가게 '훈감동'
▶️ 약 25평형
▶️ 설계기간 3주 / 시공기간 1개월
▶️ 공간 전체 설계 / 냉난방기 / 간판 및 사인물 / 화장실 / 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