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BLACK.
개인적으로 컬러 중 블랙을 좋아한다.
어떤... 의미를 떠나 그냥 좋아하는 색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검정으로 만들면 멋져 보인다. 견고해 보이기도 하고, 섹시해 보이기도 하고, 럭셔리해 보이기도 하고... 다른 색들과의 차이가 이 부분에서 크게 느껴진다. 영화 배트맨에서도 배트맨이 입은 무광 슈트와 캣우먼이 입은 유광 슈트는 그 느낌이 다르다. 단순히 남성이다 여성이다로 나뉘는 부분은 아니다. 과연 배트맨이 파란 슈트를 입었다면 배트맨 고유의 느낌이 나올까?
블랙은 어떤 질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무수히 많은 결과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다.
최근 반타 블랙이라 하는 블랙까지 나왔다. (개인적으로 진짜 블랙 같아서 매력적이다.)
이번 프로젝트 콘셉트는 'BLACK'이다.
압구정에서 미팅을 했다.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압구정에 다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압구정은 뭔가... 멋 좀 부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상권인 것 같다. SNS 핫플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진짜 명소가 더 많은 상권이다.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상권에서는...)
이런 상권에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니... 그 기분에 살짝- 흥분상태로 미팅에 참석했다.
젊은 셰프님이 함께 나오셔서 오너들과 함께 미팅을 이어나갔다.
오너들의 회사는 F&B 분야가 사업 확장 분야였고, 메인 사업은 IT 투자 쪽에 가까운 것 같았다. 즉, F&B 분야가 처음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셰프부터 셋업이 된 걸 보니 와전 엇나가진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에서 F&B 확장을 시도하는데, 그 방식이 정석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일식요리주점 '갓포슌'은 2층,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적지만 주방의 이미지와 함께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주방 바로 앞에 닷지 석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초밥 오마카세를 제외하고 Bar에 앉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갓포슌에 가면 항상 닷지석은 만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 위 이미지가 갓포슌 닷지석의 모습이다.
2층 홀을 지나 바로 보이는 계단을 통해 올라오면 3층 공간을 즐길 수 있는데, 3층은 온통 룸이다.
총 룸 4개가 구성되어 있다. 기본 6인 룸에 8인 룸도 있다. 코로나 영향인지, 룸도 항상 만석이다. 처음 알려지기 전엔 예약하기 쉬웠는데, 지금은 어렵다.
각 공간들은 전부 BLACK 콘셉트 안에서 내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각 룸마다 일부 창을 활용해 외부 압구정 거리의 풍경을 저녁에는 내부로 끌어왔다. 사실 상층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때 서울 야경은 분위기를 한층 높여준다. 특히, 주말 저녁 이곳 거리의 풍경은 매력적인 도시 이미지를 보여준다. (술맛을 더욱 돋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창의 비율을 적절히 선택해서 최상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BLACK은 인테리어에서 가장 어려운 컬러이기도 하다.
어떤 질감으로 블랙을 표현했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너무 달라진다. 클럽 같이 완전 암흑만 필요하다면 그냥 페인트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마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명에 의해서 분위기 있는 조도가 형성되는 공간 즉, 레스토랑이나 카페와 같은 상공 간은 블랙으로 표현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이번 갓포슌 프로젝트에서는 질감 표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바탕인 벽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이코스' 업체에 연출을 맡겼다. 오이코스는 과거 평창동 고급 주택 인테리어를 하며 인연이 됐는데, 국내에 질감 표현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해결하는 업체는 이곳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빈티지 스타코 같은 연출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이코스'는 표현 방식에 따라서 테크닉도 다르고, 자재 쓰임도 달리한다. 즉, 콘셉트에 어울리는 벽체를 만들 수 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블랙이지만, 매우 고급스럽고 단순하지 않은 벽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우드블랙, 대리석 블랙 등 다른 소재들의 블랙을 통해 공간에 지루하지 않은 재미를 주었다.
조명은 최대한 단순하게 계획했고, 다른 것들은 모두 제외했다.
사실 처음에 클라이언트들은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걸로 기억한다. 늘 겪는 일이다. 인테리어는 공정들이 진행되면서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중간에 공간을 바라보면 굉장히 허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때 허전하다며 뭔가 계속 넣기 시작하면 결국 완성됐을 때 굉장히 버거운 공간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을 쉽게 설득할 방법은 없다. 지금 당장 보기엔 허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나중 공정으로 플랜트를 연출하는 것으로 공간을 채웠다.
내 공간엔 플랜트 연출이 기본적으로 포함되기도 한다.
플랜트는 공간에 많은 것들을 채워준다. 시각적인 밀도도 채워주고, 느낌도 채워준다. 자연물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개체이다. 다만, 생화를 넣었을 땐 관리를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요즘은 A급 조화가 아주 잘 나왔다. 이 프랜트 연출만으로도 공간에 좋은 감성을 심어 줄 수 있다.
갓포슌도 맨 마지막 공정에서 플랜트 연출이 한몫을 해냈다.
난 갓포슌을 디자인한 사람으로 한동안 프로젝트와 현장을 지켰지만, 지금은 갓포슌을 자주 찾는 고객이 되었다. 특히, 3층 룸에서 소중한 지인들을 만나기에 너무 탁월하다. 프라이빗함도 즐길 수 있고, 맛있는 메뉴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
특히, 이곳 셰프가 직접 초이스 유통하는 사케는 소개받을 때마다 너무 맛있다. (최근 가서 맛 본 '니모'라는 사케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최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이자 애착 가는 공간이다.
애초에 현장 컨디션이 좋진 않아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고, 오픈에서부터 지금 잘되는 모습까지 디자이너이자 한 명의 단골손님으로 보게 되니 더욱 그런 감정이 드는 것 같다.
잘 돼서 기분이 더 좋다.
▶️ 일식요리주점 '갓포슌'
▶️ 60평형
▶️ 설계기간 3주 / 시공기간 8주
▶️ 디자인 기획 / 인테리어 설계 / 주방 설계 / 시공 / 가구 코디네이션 / 단골고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