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어느 날 내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이곳 '브런치'를 통해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장준우 셰프로부터 온 메시지.
안녕하세요. 존 디렉터님. 반갑습니다.
저는 장준우라고 합니다. 현재 푸드 라이터 겸 와인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 버티고개 쪽에 공간을 새로 하나 기획 중인데 마침 디렉터님께서 브런치에 쓰신 식음료 공간 관련 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도 되고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 흥미롭게 잘 읽어보았습니다.
이번에 준비하는 공간은 그리 큰 공간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요식업장이 아니라 콘텐츠가 함께 버무려진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관련해서 한번 미팅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대략 14평(4m*11m) 정도 되는 아파트 상가 공간이며 현재 스케줄은 4월 중순에 전 세입자가 빠져 인테리어 기간을 3주 정도 받아 놓은 상황입니다. 대략 늦어도 5월 중순, 6월 초 공간이 완성되었으면 하는데 혹시 스케줄 상 작업이 가능하시다면 자세한 사안은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사실 장준우 셰프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진 않았지만, 내 주변 많은 페친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자 출신 셰프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쩐지... 처음 그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연락 주셨던 다른 분들과는 달리 짧은 메시지였지만 뭔가... 글이 깔끔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기자 출신 셰프라는 설명이 그때 느낌을 해소해주었다.
주소를 받고 늘 그렇듯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갔다.
주변을 살펴보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곳의 환경을 느껴보는 게 습관이다.
솔직히, 처음 주소지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다.
'셰프라며...' '아파트 상가...?' '여기서? 와인을?' 등. 장소에 대한 첫인상은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낡은 상가...
장소 옆집은 '스윙'이라는 카페였는데,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일찍 도착한 나는 '스윙'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왜?'라는 의문에 답을 찾으며 장준우 셰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카페에 하나, 둘 손님들이 자주 들어왔는데, 이 정도 텀으로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는 카페면 웬만한 상권의 카페보다 매출이 높겠다 싶을 정도로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들어오는 손님들은 거의 전부 당골 같았다.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손님들과 '스윙' 사장으로 보이는 분 사이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라!? 손님들이 평범하지 않았다.
나도 커피를 만들며 손님을 맞이했던 적지 않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손님에 대한 감이다.
이곳 '스윙'에서 만난 손님들은 보통 다른 상권에서 만날 수 있는 손님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스윙' 사장님과 나누는 대화 내용이 남달랐기 때문에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잠재 손님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다시 '와인, 그로서리, 바(bar)'를 생각하니 매칭이 찰떡궁합이었다.
이때야 비로소 장준우 셰프의 공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장준우 셰프를 만났을 때 정식으로 인사를 하자마자 '스윙'에서 목격한 평범하지 않았던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왠지 멋진 공간에 멋진 손님들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한 1시간 30분 정도? 장준우 셰프가 만들고 싶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감각 있는 식음매장 오너들은 공통적으로 '진짜'를 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란, 오리지널 & 오리지널리티를 말한다.
이를테면 지금까진 이탈리아 레스토랑 하면 분위기 있는 공간이 특징이었다. 이탈리아라는 장소성이나 메뉴가 주는 느낌, 어떤 모티브에서 시작한 콘셉트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분위기가 좋으면 그걸로 만족을 했었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만난 셰프들은 하나 같이 특정 지역을 많이 언급했고, 가급적이면 그 지연에서 볼 수 있는 실제 매장에 가까운 분위기를 요구했다. '오리지널'.
그러면서도 독창성을 원한다. '오리지널리티'.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최근까지 유행했던 '맹목적적인 미니멀' 스타일에 항상 의문이 많았다.
왜? 미니멀해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질문에 답이 딱히 없었다. 그냥 유행하니까? 유행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보기에 좋아서? 그런데 그런 사실과 자신의 브랜드는 무슨 상관일까?
식음공간 인테리어를 패션 스타일처럼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업시장에서 인테리어는 쉽게 바꿀 수 없는 항목이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은 언제든지 원하는 기종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번 한 인테리어는 문 닫을 때까지 바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유행에 맞춘 스타일을 입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오늘 핫함은 내일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장준우 셰프는 '와인 그로서리'라는 키워드를 말했다.
이젠 메뉴뿐 아니라 메뉴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모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콘셉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와 판매되고 있는 것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조라면 소비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 커피숍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방금 마신 원두를 구입해가는 손님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즐거운 경험은 무시 못한다.
재밌는 상상을 했다.
큰 와인셀러. 작은 공간 자체가 와인셀러처럼 보이면 어떨까?
그야말로 와인 그로서리?
이 콘텐츠는 사실 내 경험에서 시작했다.
난 와인 마시러 갔을 때 내 와인을 고르러 와인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간 가게 사장님 뒷모습을 보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과연 사장님은 어떤 와인을 가지고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게 된다.
장준우 셰프의 공간에서도 비슷한 연출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Bar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우드 소재를 활용해 따뜻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실 가장 고전적인 시공 방법을 선택했다. 요즘은 마감재도 훌륭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지만 그... 느낌이란 게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고전적인 시공 방법이란, 목수가 손수 나무를 활용에 모양을 내고, 이리저리 조색해 결정한 색상으로 나무를 염색하고, 그 위에 코팅까지 올리는 과정을 말한다. 요즘은 이런 시공 방법을 추구하는 곳이 별로 없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만큼 비용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그대로 감당해야 될 경우가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랑 비슷하다. 지웠다 그리고, 그리고 지우 고를 반복하는 행위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완성해 놓은 공간은 그 어떤 공간보다 힘이 느껴져서 좋다.
조명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값비싸고, 좋은 조명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예산 내에서 최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포인트 조명과 기본 조도 조명을 적절히 계획했다. 그리고 적절한 조도를 맞추기 위해 와트수를 달리하며 현장에서 셰프와 함께 조정하고 디머 기능을 적절히 설치했다.
개인적으로 조명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이란 게 사실 없다. 조명의 기능이나 제원보다 더 중요한 게 경험이다. 직부냐, 매입이냐, 매달리냐... 스폿이냐 확산이냐 간접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떻게 계획해야 이 매장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느냐! 에 관한 경험이다.
경험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간판을 대신한 전면 디자인.
공사가 거의 끝날 때쯤 고민 하나를 하고 있었는데...
간판 디자인이었다. 매장이 위치한 큰 건물(타운 상가) 자체가 워낙 옛 모습이라 새것과 궁합이 너무 안 맞았다. 어떤 간판을 걸더라도 어색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나? 싶었는데-
장준우 셰프가 한마디 아이디어를 냈다.
'그냥 간판을 안 하고, 시트 디자인 같은 걸로 더 눈에 띄게 할 수 있을까요?'
음- 역시 경험이 있는 오너의 경우는 더 중요한 부분을 챙기는 결정을 잘한다.
사실 맞는 소리다. 간판이 간판 역할을 못하는 곳들도 많다. 그래서 굳이 필요 없는 곳은 설치할 필요가 없다. 간판의 기능만 대체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그래서 장준우 셰프가 떠오르는 이미지로 디자인 작업을 했다.
굉장히 디테일하고, 촘촘한... 장준우 셰프의 턱수염 같은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다.
잘 어울렸다.
난 과정이 즐거운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장준우 셰프와도 좋은 우정이 계속 쌓여갔으면 좋겠다.
"곧 놀러 갈게요..."
▶️ 와인 그로서리 & 바 '어라우즈'
▶️ 13평형
▶️ 설계기간 3주 / 시공기간 4주
▶️ 디자인 기획 / 인테리어 설계 / Bar 설계 / 시공 / 그래픽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