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기록

by 심수미

-안면마비

:동탄 병원 진료를 거의 1년만에 다녀왔다. 임신 준비와 출산 과정에서 어차피 보톡스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가지 않은 터였다. 환측 눈가와 볼, 건측 입가 등 몇 방 맞고 왔을 뿐인데 눈에 띄게 얼굴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회복된 게 아니라 근육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잡아주는 효과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교수님은 입둘레근 운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해주셨고, 눈가가 쪼이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하루에 한두번씩은 운동을 하고 있다. 거울보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아기에게 하루에 몇십번씩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은근히 입둘레근 운동과 비슷한 효과가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성인의 충치균이 옮을 수 있어 뽀뽀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원래도 유명한 교수님은 전공의 파업으로 일손이 부족해져서 대기가 더 길어졌고, 이제는 아예 신규 환자를 받지 않고 기존 환자 진료만 보신다고 한다. 대기를 건지 6개월 만에나마 진료를 볼 수 있는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뉴스로만 보던 의료파업이 실감나는 날이었다.


-책 출간 준비

:출판사 편집자님을 만나 에세이집 초고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출간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게 2019년인가 2020년이었으니...장장 5년이 걸려 완성된 초고였다. '혹시라도 특정 정치세력에게 공격받을 여지는 없나?' '등장 인물들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닌가?'의 무한 굴레 속에서 주저주저하며 쓰고 나면 '아휴 이게 무슨 재미가 있으려나...'로 귀결되었던 글들이다. 내부 마케팅팀 등의 검토를 두루 거쳤다며, 타깃 독자층을 고려할 때 수정하면 좋겠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출판사도 영리기업이기 때문에 재미 없으면, 상품성이 없으면 출판하지 않으니 재미 부분에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따듯한 격려도 해주셨다. 앞서 '여자전쟁'의 번역 과정에서도 참을성있게 한결같이 따듯하게 기다려주신 출판사다. 그때야말로 특정 정치세력으로부터 공격받으며 공황과 우울증을 겪던 시절인데, 번역서 출간은 현실을 잠시 잊고 몰입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었다. 이번에도 죽이되나 밥이되나 에세이를 쓰겠다고 노트북 앞에서 씨름하며 안면마비로 힘든 시기를 또 잘 이겨내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을 자주 곱씹었었는데,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했어도 숨 쉴 구멍은 늘 있다. 감사한 인연들이 너무나 많다.


-폭싹 속았수다

: 2025년 3월은 단연 '폭싹 속았수다'로 기억될 것 같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보니 더더욱 눈물이 줄줄 흘렀다. 딸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을, 미안하고 고마울수록 더 짜증이 나는 딸들의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했는지.


-육아

: 애석하게도 백일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 8시에 자면 1~2시에 한번 깨고 6~7시에 깨니까 이정도면 통잠 축에 드는 것 같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젖병 거부 현상이다. 젖꼭지를 s에서 m으로 바꾸면서 오는 과도기인지, 자꾸만 사레들리고 괴로워해서 종류별로 사보았는데 아직까지 무엇 하나에 정착하지 못해 밥 먹일때마다 괴롭다. 순하던 아기가 배고프니 낮잠도 푹 못자고 짜증이 잦아졌다. 하루종일 벌서는 기분으로 아기를 안고 쩔쩔 매다보면 '엄마 살려줘'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나마 다행히도 엄마가 자주 와 계신다. '폭싹 속았수다' 독백 대사중에 "누더기로 내려갔던 나는 풀 먹여 올라왔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엄마가 있는 날마다 나는 풀 먹인 옷마냥 산뜻해진다. 감사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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