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혀지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예컨대 프랑스 워크캠프를 갔던 2004년 7월과 8월. 르 퓌 엉 블레 라는 이름도 어려운 시골마을에서 나는 다양한 나라에서 모여든 또래 아이들과 거의 다 허물어진 중세시대 성을 재건하고 프레스코 벽화를 칠하는 일을 했었다. 10시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일을 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저기 나무 뒤편 아무데나 가서 해결해'라는 식이었다.(다행히 나는 화장실을 잘 참는 류의 인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뒷산에 올라 멍을 때리고, 캠핑장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한없이 나른하고 평화로웠던 그 들판의 햇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아기 유모차를 끌고 집 앞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2025년 4월의 햇살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또렷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브런치든 일기장이든 통 펼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하루 하루가 바쁘고 행복하게 지나갔다. 아기가 웃음이 많아졌고, 나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싫고 좋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인간같아진다. 왜 우는지 종잡을 수 없어 난감하기만 했던 신생아 시절에는 몰랐던 귀여움이 폭발한다. 단전에서부터 행복감이 치밀어 올라온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아기를 끌어안고 "너~무 좋아"라고 외치곤 했다.
아기 자체도 귀엽지만, 아기 덕분에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웃으며 보내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안면마비 치료 등등 병원 가고 개인 볼일 보라고 엄마가 자주 우리 집에 와주신다. 엄마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아빠가 태워서 같이 온다. 결혼 후에도 2~3주에 한 번씩 친정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왔지만 남편 조카 언니들까지 7명이 식사하는 자리니까 거의 피상적인 대화만 오갔었는데, 이렇게 단 둘이 또는 셋이 밥을 자주 먹으니 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게 되었다. 안면마비 관련해서도, 나는 엄마가 걱정하는 게 싫으니까 아예 언급을 피해왔었는데, 최근에서야 뒤늦게 "나 그때 너무 무서웠잖아." 라고 털어놓았다. 너무 힘들었다고. 막막했다고. 그래서 이거 저거 하면서 그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고. 다 큰 딸의 어리광을 뒤늦게 봐서인지 엄마는 쉬시라고 해도 자꾸만 우리 집에 온다. 자꾸 나보고 나가라고 한다.
2004년 두 달의 워크캠프 이후 나는 원래 혼자 유럽 배낭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합류해서 9월과 10월까지 함께 여행을 다녔었다. 프랑스->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루마니아->터키->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 남부(모나코, 니스)->스페인까지, 엄마는 캐리어를 끌고 아빠와 나는 머리 위까지 높은 배낭을 메고 다녔다. 미슐랭 고급 레스토랑을 가지는 못했지만 마트에서 장봐서 백숙 해먹고 햇반에 김 갖고다니며 돗자리펴서 먹고 그렇게 다녔다. 그때는 에어비앤비가 없었으니, 저렴한 호텔이나 한인 민박집을 자주 이용했었다. 반지하같은 민박집 바닥 매트리스에서 자면서, 나중에 돈 벌면 엄마아빠 데리고 고오급 호텔에 비싼 밥 먹으면서 여유있게 다녀야지 다짐했었다. 그래서 2022년에 영국 여행을 셋이 갈 때 호텔이며 식당이며 나름 신경써서 예약했는데 엄마는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뿐,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20년 전의 배낭여행 백숙과 햇반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 그때는 왜그러는지 몰랐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알겠다. 나도 찰떡이와 배낭여행 다니면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만 자랑하고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