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모는 양공주였다.
엄마와 밥을 먹다가 이 말을 듣고 잠시 씹는 걸 멈췄다.
미군 부대 가정집에서 식모살이를 한 게 아니었어?
그거는 나이 들어서 한 거고. 그보다 훨씬 전에... 남한에 피난 와서 열 셋인가 열 네살쯤에 원래 미군부대 철조망에 붙어서 빨랫감 받아다 빨래 해주는 일을 했었대. 그러다가 누가 소개를 해준건지 어쩐건지는 몰라도 그 쪽으로 들어간거지. 받는 돈이 더 많았을테니까.
고모는 1녀 3남 남매의 장녀였다. 평안도 정주군에 살았던 할아버지는 1.4후퇴때 일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아빠의 생일은 51년 1월 20일. 그러니까 할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배를 타고 남쪽에 와서 곧바로 몸을 푼 것이다. 땅부자로 별다른 직업이 없었다던 할아버지는 남한에 와서도 이렇다할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열서너살이었을 고모는 여섯 식구의 가장 노릇을 한 셈이다.
왜 명절때마다 큰집에 모이면 싸움으로 끝이 났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늘그막에 정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고모는 주택가 반지하에 살았다. 뚱뚱하고, 쾨쾨한 냄새가 났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도 고모가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적었지만,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언니와 나를 보며 가끔씩 싱긋 웃곤 했다. 어색하고 약간은 쑥스러운 미소였다. 그러다 명절에 모여 술을 마시면 그렇게 큰아버지와 대거리를 했다. 큰아버지는 고모를 한심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고모는 서운하고 원통한 마음을 폭발시켰다.
고모는 서운했을 것이다. 국민학교 6학년때인가 피난을 오면서 졸업도 미처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낯선 남한 땅에서 열 서넷 여자아이에게 선택지가 뭐가 있었을 것이며 그 일이 뭐가 즐거워서 했겠는가. 고모가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3형제는 고등학교를 마쳤고, 큰아버지는 교직원이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었다. 고모가 꾸역꾸역 서러움을 삼키며 번 돈이 흘러 흘러 내가 따듯한 집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고모 생전에 따듯하게 손 한번 더 잡아드릴걸. 음식점에서 창밖을 멍하니 보던 눈빛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흑인 병사랑 결혼하려고 했었는데 미국 가더니 연락이 끊겼대. 그리고 나중에 한국 남자랑 결혼을 하긴 했는데 애가 안 생기더라는거야.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애 낳을 다른 여자를 아예 집안에 들여오더래. 남편이랑 그 여자만 같은 방을 쓰게 하고 고모한테는 요강 비우게 하고 보란듯이 허드렛일만 시켰다고. 그래서 그냥 짐싸서 혼자 몸만 나왔단다. 나랑 같이 살 때 만취해서 한 얘기야. 아마 자기가 그(양공주) 일을 해서 애가 안 들어선 것 같다고. 너무 어린 나이부터 그 일을 해서...
미국 선원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간 기지촌 여성의 딸, 그레이스 M. 조가 쓴 <전쟁 같은 맛>을 찾아 읽었다. 셔헤일리스라는 시골에서 인종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머니는 저자가 열 다섯살 즈음 조현병이 발병한다. 성인이 되어 올케로부터 '어머니는 매춘부였어요'라는 말을 듣고 뒤늦게 기지촌 성노동자였음을 알게 된다. '오키(옥희)'라는 환청이 계속해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박사 논문의 한 장으로 나는 기지촌 성노동자라는 존재가 디아스포라 한인 문화예술에 유령처럼 출몰하는 방식에 대해 쓰면서, 노라 옥자 켈러의 소설 '여우소녀'를 읽었다. 19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미국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두 10대 소녀 현진과 숙희의 이야기다. 숙희는 현진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로 현진을 이끌거 가 거기서 자기를 분리하는 법을 가르친다. 해야되는 거면 뭐든 지 할 수 있어...쉬워. 하면 할수록 그게 너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진짜 너는 날아가버리는 거야. 숙희는 현진의 꿈속에 출몰하는 유령이자,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이며, 트라우마의 흔적이다. 우리 엄마에게도 숙희가 있었을까? 그 이름은 옥희인 걸까?"
우울 증상이 심해지는 어머니는 제대로 된 음식을 거부하고 쓰레기통에서 말라 비틀어진 빵을 주워먹거나 상한 야채 같은 것들을 먹는다. 저자는 미군부대 쓰레기통에서 담배꽁초와 버려진 치즈버거 같은 것들을 주워먹었을 나이 어린 어머니를 떠올린다. 나는 고모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이렇게 책을 통해서나마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해볼 뿐이다.